소장기록

제목[1983.09.01] 소련군에 의한 KAL 여객기 격추


설명1983년 8월 31일 오후 1시 5분(한국 시간) 승객 240명과 승무원 29명 등 269명을 태우호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김포공항으로 오던 KAL 보잉 747 점보여객기(KE 007편)이 다음날 새벽 3시 26분 구 소련령 사할린 부근 모네론섬 상공에서 소련 극동군관구 방공군 소속 수호이기가 발사한 미사일을 맞고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 무장한 소련 전투기가 비무장한 민항기를 격추시킨 사건이었다. 6월 29일, 이범석 외무부장관의북방정책선언 이후 불과 2개월 후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유화국면을 맞이하던 북방정책은 급속히 냉각되고 말았다. 사건 확인 후 한국 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소련의 비인도적인 행위에 강력히 항의하고, 소련 당국의 사과와 피해 보상, 사건 책임자 처벌,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 보장 등 4개 항을 요구하며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 ICAO 특별총회 긴급소집 등 관련 국제기구의 회원국들의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은 강경하게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이 사건을 자국의 안보를 위해 취한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힘의 논리를 내세웠다. 한국 정부는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고 UN에 호소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동원하였으나 냉정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규탄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냉전체제 속에서 어떠한 보상도 받아내지 못하였다. 또한 KAL기 사건으로 한국 외교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하였던 공산권과의 관계증진 노력이 수포가 되었고, 1988년 9월에 개최예정이던 올림픽 추진에 먹구름을 던져주었으며, 전두환 정부의 외교계획에 대폭적인 수정을 가져오게 하였다. 한편, 세계적으로는 신냉전의 기운을 벗어나 막 새롭게 형성되고 있던 화해의 기운을 다시 동결시킴으로써 동·서 간의 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날짜1983.09.01


참고자원국가기록원


참고자원URL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2850


연표구분전두환 정권


관련인물조직KC-O-00004


식별번호KC-Y-0023


제목[1983.09.01] 소련군에 의한 KAL 여객기 격추


설명1983년 8월 31일 오후 1시 5분(한국 시간) 승객 240명과 승무원 29명 등 269명을 태우호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김포공항으로 오던 KAL 보잉 747 점보여객기(KE 007편)이 다음날 새벽 3시 26분 구 소련령 사할린 부근 모네론섬 상공에서 소련 극동군관구 방공군 소속 수호이기가 발사한 미사일을 맞고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 무장한 소련 전투기가 비무장한 민항기를 격추시킨 사건이었다. 6월 29일, 이범석 외무부장관의북방정책선언 이후 불과 2개월 후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유화국면을 맞이하던 북방정책은 급속히 냉각되고 말았다. 사건 확인 후 한국 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소련의 비인도적인 행위에 강력히 항의하고, 소련 당국의 사과와 피해 보상, 사건 책임자 처벌,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 보장 등 4개 항을 요구하며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 ICAO 특별총회 긴급소집 등 관련 국제기구의 회원국들의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은 강경하게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이 사건을 자국의 안보를 위해 취한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힘의 논리를 내세웠다. 한국 정부는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고 UN에 호소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동원하였으나 냉정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규탄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냉전체제 속에서 어떠한 보상도 받아내지 못하였다. 또한 KAL기 사건으로 한국 외교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하였던 공산권과의 관계증진 노력이 수포가 되었고, 1988년 9월에 개최예정이던 올림픽 추진에 먹구름을 던져주었으며, 전두환 정부의 외교계획에 대폭적인 수정을 가져오게 하였다. 한편, 세계적으로는 신냉전의 기운을 벗어나 막 새롭게 형성되고 있던 화해의 기운을 다시 동결시킴으로써 동·서 간의 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날짜1983.09.01


자원유형연표


참고자원국가기록원


참고자원URL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2850


연표구분전두환 정권


관련인물조직KC-O-0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