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록

제목[1987.01.01] 제6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계획


설명배경 제5차경제사회발전계획 기간 동안 국제경제 여건의 호전으로 물가안정 기조가 정착되고 경상수지 흑자가 실현되어 외채없이 국내투자재원을 동원하여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제6차경제사회발전계획은 능률과 형평을 토대로 한 경제의 선진화와 국민복지의 증진을 기본이념으로 하여 선진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작성되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방향으로는, 첫째, 경제사회의 제도 발전과 질서를 선진화하고, 둘째,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기술입국을 실현하고, 셋째, 지역사회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고 국민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시행한 1차년도가 진행된 이후에 유가 및 환율의 변화가 더욱 유리하게 전개됨에 따라 거시경제 조건이 더 호전되자 1988년 12월에 기본목표와 시책을 수정하게 되었다. 이 수정계획에 따르면, 자율, 안정, 복지의 조화를 기본이념으로 하고 기본방향은 첫째, 경제운용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공정성을 확보하며, 둘째, 경제의 균형발전과 서민생활의 향상을 도모하고, 셋째,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정계획에서는 선진사회로 진입을 위한 효율보다는 경제의 형평과 개방을 더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계획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이 10%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1인당 소득이 1987년 3,110달러에서 1991년 6,518달러로 상승하였다. 이러한 고도성장은 낮은 엔/달러, 저유가, 저금리를 의미하는 3저호황 속에서 수출과 설비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결과이었다. 이 기간에 국민저축률은 36.3%에 달했고 총투자율은 34.0%에 달하여 해외로의 자본수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1989년 수출기여도가 낮아져 내수에 의존하는 성장의 결과로 국제수지가 다시 악화되어 경상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그리고 새로운 경상수지 흑자의 확대는 통상마찰을 초래하고 개방압력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계획 후반기에는 내수에 의존하는 고도성장의 결과로 물가안정이 흔들리게 되었다. 3저호황으로 국민소득이 증대하였지만 국제수지 흑자와 물가안정 기조가 흔들리고 부동산투기가 크게 성행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정치,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경제의 자율화, 개방화가 큰 진전을 보이면서 경제사회개발계획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날짜1987.01.01


참고자원국가기록원


참고자원URL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6117


연표구분전두환 정권


식별번호KC-Y-0043


제목[1987.01.01] 제6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계획


설명배경 제5차경제사회발전계획 기간 동안 국제경제 여건의 호전으로 물가안정 기조가 정착되고 경상수지 흑자가 실현되어 외채없이 국내투자재원을 동원하여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제6차경제사회발전계획은 능률과 형평을 토대로 한 경제의 선진화와 국민복지의 증진을 기본이념으로 하여 선진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작성되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방향으로는, 첫째, 경제사회의 제도 발전과 질서를 선진화하고, 둘째,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기술입국을 실현하고, 셋째, 지역사회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고 국민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시행한 1차년도가 진행된 이후에 유가 및 환율의 변화가 더욱 유리하게 전개됨에 따라 거시경제 조건이 더 호전되자 1988년 12월에 기본목표와 시책을 수정하게 되었다. 이 수정계획에 따르면, 자율, 안정, 복지의 조화를 기본이념으로 하고 기본방향은 첫째, 경제운용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공정성을 확보하며, 둘째, 경제의 균형발전과 서민생활의 향상을 도모하고, 셋째,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정계획에서는 선진사회로 진입을 위한 효율보다는 경제의 형평과 개방을 더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계획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이 10%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1인당 소득이 1987년 3,110달러에서 1991년 6,518달러로 상승하였다. 이러한 고도성장은 낮은 엔/달러, 저유가, 저금리를 의미하는 3저호황 속에서 수출과 설비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결과이었다. 이 기간에 국민저축률은 36.3%에 달했고 총투자율은 34.0%에 달하여 해외로의 자본수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1989년 수출기여도가 낮아져 내수에 의존하는 성장의 결과로 국제수지가 다시 악화되어 경상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그리고 새로운 경상수지 흑자의 확대는 통상마찰을 초래하고 개방압력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계획 후반기에는 내수에 의존하는 고도성장의 결과로 물가안정이 흔들리게 되었다. 3저호황으로 국민소득이 증대하였지만 국제수지 흑자와 물가안정 기조가 흔들리고 부동산투기가 크게 성행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정치,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경제의 자율화, 개방화가 큰 진전을 보이면서 경제사회개발계획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날짜1987.01.01


자원유형연표


참고자원국가기록원


참고자원URL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6117


연표구분전두환 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