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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강력한 주도로 산업화와 고성장을 이루었던 개발국가 모델은 70년대 후반부터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1979년 경제안정화종합대책부터 외환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요한 경제정책과 변화의 흐름을 오형석 선생님의 설명으로 함께합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꾸준한 경제 성장은 이제 한국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이 아니라 선진국(developed country)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1988년 IMF 8조국 가입은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겠죠. 그런데 그 보다 한국이 이제 ‘선진국’ 지위에 올랐다고 생각할만한 더 결정적인 계기는 1996년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이었습니다.

OECD 가입 축하 리셉션에서 OECD 사무총장과 악수하는 김영삼

한국의 OECD가입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우선 “OECD 회원국이 과연 ‘선진국’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선진국을 어떻게 정의하냐는 참 어려운 문제죠. 우선 무엇을 기준으로 선진국을 구분하냐의 문제가 있는데요, 과연 경제적 지표를 선진국의 척도로 삼을 수 있는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1인당 국민소득이 낮더라도 전반적인 국민들의 교양 및 의식 수준이 높은 국가와 그 반대인 국가 중에서 어느 국가가 더 ‘선진국’에 가깝냐고 한다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 일테니까요. 다만, 대체로 이 두 요소(경제적 수치와 사회문화적 의식) 사이에 연관성이 높다는 점과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통용되는 선진국 판단의 지표가 경제 수치라는 점을 고려해서 아래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을 중심으로 선진국을 판단해 보겠습니다.

일단 OECD의 역사와 회원국 목록을 살펴봅시다. (단, 아래는 OECD에서 2011년에 발행한 팜플렛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내용과 목록은 2011년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습니다.)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는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의 재건을 위해 미국이 자금을 지원한 마셜 플랜을 운영하기 위해 1947년에 설립되었다. 개별 정부가 자국 경제의 상호의존성을 인지하게 함으로써, 그것은 유럽의 면모를 변화시키는 협력 시대를 위한 길을 열었다. 이러한 작업을 세계적 무대에서 진전시키고자 하는 전망을 갖고, 캐나다와 미국은 1960년 12월 14일에 새로운 OECD 조약에 서명하고 OEEC 회원국에 합류했다. OECD는 이 협약이 발효된 1961년 9월 30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1964년 일본을 시작으로 다른 국가들이 합류했다. 오늘날, 전세계 34개 OECD 회원국들은 문제를 확인하고, 이 문제들을 토론하고 분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서로 의지한다. 그 실적은 놀랍다. 미국은 OECD 창설 이후 50여년 뒤에 1인당 GDP가 거의 세 배에 이르렀다. 다른 OECD 국가들도 비슷하며, 일부 경우는 훨씬 더 극적인 진전이 있었다.

OECD 회원국(가입연도): 노르웨이(1961), 포르투갈(1961), 스페인(1961), 스웨덴(1961) 스위스(1961), 터키(1961), 영국(1961), 미국(1961), 일본(1964), 핀란드(1969), 오스트레일리아(1971), 뉴질랜드(1973), 멕시코(1994), 체코(1995), 헝가리(1996), 한국(1996), 폴란드(1996), 슬로베니아(2000), 칠레(2010), 에스토니아(2010), 이스라엘(2010), 슬로바키아(2010) [OECD. 2011. Better policies for better lives: The OECD at 50 and beyond, pp.10-11]

정리하자면, OECD의 전신은 유럽 국가들로 구성된 OEEC인데, 여기에 1961년에 미국과 캐나다가 합류하면서 OECD가 되었고, 여기에 1964년부터 일본을 시작으로 신규 가입이 이뤄졌네요.

그렇다면, 원래 처음부터 OEEC에 있던 국가들을 제외하고, 그 이후에 가입한 국가들이 가입 당시에 어느 정도 경제적 지위가 있었는지를 파악해보면 OECD 가입의 성격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파악이 가능하겠습니다. 1964년 이후 OECD 신규 가입은 크게 두 범주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신규 가입한 일본, 핀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이고,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약 20년 뒤인 1994년부터 1996년에 신규 가입한 멕시코, 체코, 헝가리, 한국, 폴란드입니다. 이 두 범주의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의 정도를 한번 비교해보죠. (비교를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아래에서는 ‘유로지역’의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합니다)

일본: 1964년 1인당 국민소득 $800 (유로지역의 약 60.7%)
핀란드: 1969년 1인당 국민소득 $2,270 (유로지역의 약 109.8%)
호주: 1971년 1인당 국민소득 $3,470 (유로지역의 약 139.8%)
뉴질랜드: 1973년 1인당 국민소득 $3,990 (유로지역의 약 107.5%)
멕시코: 1994년 1인당 국민소득 $5,310 (유로지역의 약 24.8%)
체코: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5,110 (유로지역의 약 22.7%)
헝가리: 1996년 1인당 국민소득 $4,420 (유로지역의 약 18.6%)
한국: 1996년 1인당 국민소득 $13,040 (유로지역의 약 54.8%)
폴란드: 1996년 1인당 국민소득 $3,830 (유로지역의 약 16.1%)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은행 자료의 ‘GNI per capita, Atlas method (current US$)’를 활용함]


1960-70년대 OECD 신규 가입국과 1990년대 OECD 신규 가입국의 가입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을 보니 큰 차이가 보입니다. 1960~70년대 OECD에 가입한 국가들의 가입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유로지역의 60~140%에 이르렀던 반면, 1990년대 가입한 국가들은 16~55% 정도에 머뭅니다. 여기서 우리는 1980년대를 전후하여 OECD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죠. 1960-70년대에 OECD는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국가들로 구성된 반면에, 1990년대 OECD 신규가입 국가들의 경제력은 이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위와 같이 1990년대에 OECD의 위상이 달라진 배경에는 신흥공업국에 대한 OECD의 적극적인 가입 권유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OECD 국가들은 자신들보다 더 경제력이 낮은 국가들을 OECD 회원국으로 만들고 싶어 했을까요? 적어도 한국에 대한 가입 권유는 ‘시장 개방’이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거의 ‘정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지적을 들 수 있겠죠.

90년대 들어서 한국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압력이 더 거세졌다. 미국의 중앙은행(FRB)과 OECD는 한국 정부가 제시한 금리자유화 일정을 앞당기도록 요구하였다. 미 행정부는 92년 의회 보고서에서 한국이 OECD에 가입하도록 유도할 것이며, 미국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없애도록 할 것이라고 표명하였다. [중략] OECD 가입은 OECD의 경제 제도와 규칙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많은 제도 변화를 수반한다. 여기에는 각종 정부 규제를 철폐 및 완화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 자유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서비스 시장에 대한 규제도 바뀌어야 했다. 자본시장 자유화는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 철폐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부의 자본시장 통제력의 약화를 의미했다. 여기에는 외국인 투자제한 업종을 없애는 것도 포함됐다. [신광영. 2006. 「한국의 OECD 가입배경」, 『월간 참여사회』 2006년 12월호]

1994년,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선언’은 앞으로 변화할 한국 사회의 모습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OECD 가입 권유의 목적이 상품 및 자본 시장 개방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사후적인 해석이 아닙니다. OECD 가입 전부터 국내에서 제기되는 우려 역시 바로 이 같은 시장개방에 있었거든요.

재경원이 분석한 'OECD자유화규약 수락현황'을 보면 지난해[=1994년] 11월말 현재, 경상무역외거래자유화규약의 경우 57개 자유화 항목 중 우리나라는 절반수준인 30개 항목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27개 항목은 자유화가 전면 유보되었거나 부분적으로 자유화되어 있다. 자본이동 자유화 규약의 경우는 우리로서는 더욱 부담스런 부분이다. 전체 91개 자본이동 자유화항목 중 우리나라가 자유화 한 항목은 12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79개 항목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앞으로 자유화해야 하므로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재경원은 외환제도개혁추진과 블루프린트 이행에 따라 OECD에 가입하는 내년까지 경상거래 자유화의 경우 44개 항목, 자본이동에 관한 자유화규약은 47개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OECD가입 25개국의 평균 수준은 경상무역외거래는 50개, 자본이동은 76개 항목을 자유화하고 있어 자본이동 부문에서는 수락해야 할 항목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매일경제> 1995.03.20. 6면>

그렇다면 시장개방으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해 이렇게 많은 우려와 부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OECD 가입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이는 국제사회의 권유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강력한 추진 동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OECD가입은 정권차원의 중요한 치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가입을 서둘렀습니다. ‘OECD는 선진국 클럽인데, 드디어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다’는 식의 선전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위에서 봤듯이, 1990년대에 OECD가입은 더 이상 ‘선진국 달성’과 동의어가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집필자 | 오형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연구 관심 주제는 1990년대 전후 한국 자본주의 구조 변동의 원인과 결과이다. 학위 논문으로 <한국 발전국가 전환과 1997년 한보사태>(박사논문)와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에서 국가의 역할>(석사논문)이 있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중앙대학교, 청운대학교(산업대학), 한서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