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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 1년 후, 세기말이었던 1999년은 특기할 만한 해였습니다. 재벌 개혁을 둘러싼 갈등, IT 벤처 붐과 그 이면의 그늘, 수세에 몰린 노동계와 새로운 복지 체제에 대한 요구 등 향후 20년 간 계속 될 논쟁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한 해였습니다. 당시의 이슈들에 대해 진보-보수 언론의 사설과 칼럼을 비교하며 논쟁 지점을 살펴봅니다.

IMF 외환 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1997년 12월 18일, 제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 36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룬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전 정부와 다른 방향의 정책들을 적극 추진했다. 햇볕정책을 추진해 북한과 대결 일변도의 정책을 쇄신했고,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향후 여성부-여성가족부로 이어질 여성 정책의 시작을 알렸다.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을 발표하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을 펼쳐 한일 관계를 변화시켰고, 문화산업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컨텐츠 기반 산업 발전의 기틀을 닦았다. 또, IT-벤처 기업 육성을 위해 지원하고 초고속인터넷망/차세대이동통신망 지원, 국민PC 보급 사업 등을 통해 IT 인프라를 구축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김대중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추진했던 정책들을 돌아보면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던 한국이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어 변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IMF 관리체제를 조기 극복하기 위하여 공공부문 민영화와 자본시장 개방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화가 이루어졌고, 분양가 자율화로 대표되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 정리해고제 도입, 신용카드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은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며 심각한 사회 양극화를 낳기도 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 2년차였던 1999년은 여러모로 특기할 만한 해였다. 연초에는 '세기말'의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양산되었지만, 세계적인 IT버블, 정부의 벤처 기업 지원, 그리고 고환율에 힘입은 경상수지 흑자와 맞물려 99년 내내 주식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코스닥 지수는 1년 동안 300% 가까이 급등했고, 새롭게 탄생한 인터넷 시장을 노린다는 IT 벤처 기업의 주가는 10배, 20배 넘게 폭등했다. 이러한 광풍 속에 새롭게 등장한 20~30대 '벤처 기업가', '펀드매니저', '주식 부자'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 외환 위기 속에서도 공격적인 확장 경영을 펼치며 이전해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은 400%가 넘는 부채 비율을 감당하지 못해고 구조조정에 나서다가 11월에 들어 결국 해체되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 불투명한 기업 운영, 정경유착, 총수의 1인 지배구조 등에 대한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기아 사태와 대우그룹의 몰락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은 '재벌 개혁'이라는 화두가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급기야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이제는 시장이 재벌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라며,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하고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잡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재벌개혁이냐 재벌해체냐, 재벌 이후의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되느냐, 벤처 기업들이 재벌을 대체하는 한국 경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한편,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와 비정규 노동 형태가 급속도로 증가한 상황에서 더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노동계의 불만도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 김대중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리해고 등 정부가 원하는 정책만 밀어붙이고 노동기본권 보장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불만이었다. 특히 외환위기로 된서리를 맞이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4월 총파업을 단행했지만, '시민을 볼모로 삼았다'는 정부의 탄압과 언론의 맹공을 이겨낼 수 없었다. 노사정위원회가 파탄에 이르자 대선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정책연합을 맺었던 한국노총은 김대중 정권과 결별하겠다고 선언하고, 민주노총은 이듬 해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질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나서게 된다. 반면, 노동조합이 정규직의 이권을 지키는 것에만 몰두하여 실업자와 비정규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1999년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공고해진 보수 - 진보 언론사 간의 프레임 전쟁이 본격화된 해였다. 이듬 해인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 6.15 남북정상회담, 안티조선 운동 등 향후 20년의 정치 지형을 가늠할 사건들을 예고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재벌', '벤처기업', '노동' 등 경제 생태계의 주요 주체들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이 터져나오던 1999년, 보수 -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들이 이슈에 대응하는 태도가 어떠했는지 아카이브 기록들을 참고하여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