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11.18. 주간조선
한국경제, 재벌은 없어져야 하나
재벌 논쟁은 21세기 산업구조 방향과 얽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재벌이 이끌어온 중후장대형의 성장주도산업 대신, 벤처 중소기업 중심의 지식기반형 신산업이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3일 산업연구원에서는 '재벌개혁 이후 한국 산업의 활로와 정책방향'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이영세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센터 소장은 "21세기 우리 산업의 활로를 찾으려면 지식기반 고부가가치형 산업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동차나 철강 같은 기존 주력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화하고, 소프트웨어 생물 신소재 등 지식기반 신산업과 보완적 발전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은 지식기반형 산업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기존 산업을 도외시하는 풍조는 "화전민 생활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그는 "역사가 20∼30년에 불과한 기존 성장산업을 고도화해 계속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며 "서둘러 기존 산업에서 발을 빼면 누가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정보기술 인력이 필요한데 재벌 그룹의 손발을 묶어놓고 중소·벤처기업 중심으로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
1999.03.29. 동아일보
한국 경제 '재벌 이후’ 새 활로는 어디에
올 1월 전경련이 주도한 유럽지역 로드쇼에 참가한 재계인사 C씨는 충격을 받았다. 공식 석상에서 한국재벌의 불투명성을 공격하던 외국인 중 상당수가 사석에서는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다. 요점은 '반강제적인 앵글로색슨계 모델이 자리잡으면 한국은 무엇으로 세계와 경쟁할 것인가'라는 것. 우리 경제의 취향한 기술력, 자본 동원 능력 등에 비춰볼 때 '플라이급 선수가 헤비급과 싸우려는 시도'로 보면서 '한국이 정신 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벤처 및 지식산업이 '재벌 없는 한국경제'의 대안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대안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LG경제연구원의 김주형 상무는 '기술발전 속도가 상상을 불허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우리 같은 개도국도 한 두 품목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벤처 대안론을 지지한다. 김상무는 다만 기술적 문제를 떠나 '제품 표준화 싸움' 등에서 밀릴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벤처기술이 외국기술을 단순 복제하거나 기초기술을 외국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아 벤처에 전적으로 한국경제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이사는 '벤처 육성은 결국 창의적인 교육과 원활한 산학연계 체제에 좌우되는데 현실은 정책 목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
1999.08.31. 이코노미스트
재벌 개혁 - 개혁인가 해체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벤처기업을 경제의 기관차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여건과 능력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반도체와 조선·자동차 등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핵심산업이 재벌체제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개별기업으로 될 경우 우리의 중급 기술수준과 상대적으로 빈약한 자원으로 세계의 초일류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일본, 유럽의 거대기업들이 가장 겁내는 개발도상국 상대는 한국재벌이 아니던가. 우리가 모방하려는 대만은 오히려 우리의 재벌체제, 그로 인한 중후장대 산업의 발전을 부러워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산층 경제, 중소기업 경제나 벤처경제가 근사하게 보일 수도,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란 관념적으로 무엇이 옳다고 해서 금세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마치 살아 숨쉬는 생물처럼 경제란 변화해가는 것이다. 점점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대기업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겠는가. 가능한 한 충격을 줄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 경제란 혁명적인 발상에서 나오는 ‘청산’이나 ‘척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흰 백지에 그릴 수 있는 그림은 더더욱 아니다.
|
1999.12.09. 경향신문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벤처
인하대 경영학과 박기찬 교수
DJ 정부에서는 한국경제의 대기업 체질을 중소 벤처기업 체질로 전환시킨다는 '부품교체식'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재벌해체와 기업도산으로 이곳저곳 멍들고 구멍난 현장경제를 벤처기업들로 메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벤처타운이 실리콘밸리처럼 육성되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체질전환에 요구되는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전시 행정때문에 또다시 공적자금만 축내면서 사이비 '떳다방' 벤처인들만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YS정부때부터 매년 3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중소기업 육성에 투입해왔다. 단지 DJ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 육성이라는 단어 하나 더 첨가했을 따름이다. 일본처럼 정보기술과 인터넷 사업에 핵심역량을 결집시켜주는 벤처 정책의 방향도 없기에 서류만 갖추어 제출하면 목욕탕이나 정육점에도 벤처자금이 지원될 수 있다. 그래서 연줄 따라 돈은 새나가는데 내세울 벤처타운 없이 21세기 한국 경제를 벤처로 승부하겠다는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 재벌 등 대기업은 해체대상이 아니라 벤처기업의 기술과 사업을 구매할 수 있는 주요 고객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IMF체질에 맞춘 부채비율 200%에 연연하기 보다 오히려 대기업부터 사내 벤처사업을 활성화 하도록 유도하는 산업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1999.12.02. 한겨레신문
‘벤처 대그룹이 뜬다’
“벤처라고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세계시장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기술력으로 무장한 알짜 벤처기업들이 파죽지세로 사업영토를 넓혀가며 대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 분사나 합작투자,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덩치를 키워가는 이들 벤처그룹은, 외환위기라는 태풍에 침몰한 재벌의 공백을 메우면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벤처그룹은 기존 재벌과는 판이한 발전전략을 구사한다. 돈이 된다 싶으면 아무 사업이나 벌이는 재벌들의 문어발식 다각화와 달리, 이들은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상승효과를 높이는 쪽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한다. 투자에 기반한 회사설립과 자금조달로, 빚얻기에 의존해온 재벌과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걷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