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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 1년 후, 세기말이었던 1999년은 특기할 만한 해였습니다. 재벌 개혁을 둘러싼 갈등, IT 벤처 붐과 그 이면의 그늘, 수세에 몰린 노동계와 새로운 복지 체제에 대한 요구 등 향후 20년 간 계속 될 논쟁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한 해였습니다. 당시의 이슈들에 대해 진보-보수 언론의 사설과 칼럼을 비교하며 논쟁 지점을 살펴봅니다.

나아가 일터를 늘리기 위해 고용능력이 큰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그리고 정보산업, 문화, 관광 사업의 육성에 역점을 두고 지원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노력으로 현재 180만 명이 넘는 실업자를 금년 말 까지 150만 명으로 감소시키고, 내년과 내 후년에는 더욱 안정시키도록 할 것입니다.
정부는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이러한 정책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실제 대기업 중심의 은행대출이 작년 4/4분기부터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돌아섰습니다.
대출규모를 비교해 보면 작년 4/4분기에 대기업 대출은 6조원이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5조원이 늘어났습니다.

- 1999년 3월 1일, 김대중 대통령 3.1절 기념사 中

21세기에서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식기반 경제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컴퓨터와 인터넷 등 정보를 활용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식경제 시대에는 중소, 벤처기업과 문화, 관광산업과 같은 지식서비스산업의 발전이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전통산업인 농업과 섬유, 전자, 자동차산업 등 모든 산업에 있어서도 지식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높여 나가야 합니다.
지식을 활용한 농어민의 성공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전국민 모두가 신지식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1999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 광복절 축사 中

벤처, 재벌 이후의 대안인가?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11.18. 주간조선

한국경제, 재벌은 없어져야 하나


재벌 논쟁은 21세기 산업구조 방향과 얽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재벌이 이끌어온 중후장대형의 성장주도산업 대신, 벤처 중소기업 중심의 지식기반형 신산업이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3일 산업연구원에서는 '재벌개혁 이후 한국 산업의 활로와 정책방향'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이영세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센터 소장은 "21세기 우리 산업의 활로를 찾으려면 지식기반 고부가가치형 산업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동차나 철강 같은 기존 주력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화하고, 소프트웨어 생물 신소재 등 지식기반 신산업과 보완적 발전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은 지식기반형 산업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기존 산업을 도외시하는 풍조는 "화전민 생활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그는 "역사가 20∼30년에 불과한 기존 성장산업을 고도화해 계속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며 "서둘러 기존 산업에서 발을 빼면 누가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정보기술 인력이 필요한데 재벌 그룹의 손발을 묶어놓고 중소·벤처기업 중심으로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1999.03.29. 동아일보

한국 경제 '재벌 이후’ 새 활로는 어디에


올 1월 전경련이 주도한 유럽지역 로드쇼에 참가한 재계인사 C씨는 충격을 받았다. 공식 석상에서 한국재벌의 불투명성을 공격하던 외국인 중 상당수가 사석에서는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다. 요점은 '반강제적인 앵글로색슨계 모델이 자리잡으면 한국은 무엇으로 세계와 경쟁할 것인가'라는 것. 우리 경제의 취향한 기술력, 자본 동원 능력 등에 비춰볼 때 '플라이급 선수가 헤비급과 싸우려는 시도'로 보면서 '한국이 정신 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벤처 및 지식산업이 '재벌 없는 한국경제'의 대안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대안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LG경제연구원의 김주형 상무는 '기술발전 속도가 상상을 불허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우리 같은 개도국도 한 두 품목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벤처 대안론을 지지한다. 김상무는 다만 기술적 문제를 떠나 '제품 표준화 싸움' 등에서 밀릴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벤처기술이 외국기술을 단순 복제하거나 기초기술을 외국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아 벤처에 전적으로 한국경제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이사는 '벤처 육성은 결국 창의적인 교육과 원활한 산학연계 체제에 좌우되는데 현실은 정책 목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1999.08.31. 이코노미스트

재벌 개혁 - 개혁인가 해체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벤처기업을 경제의 기관차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여건과 능력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반도체와 조선·자동차 등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핵심산업이 재벌체제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개별기업으로 될 경우 우리의 중급 기술수준과 상대적으로 빈약한 자원으로 세계의 초일류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일본, 유럽의 거대기업들이 가장 겁내는 개발도상국 상대는 한국재벌이 아니던가. 우리가 모방하려는 대만은 오히려 우리의 재벌체제, 그로 인한 중후장대 산업의 발전을 부러워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산층 경제, 중소기업 경제나 벤처경제가 근사하게 보일 수도,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란 관념적으로 무엇이 옳다고 해서 금세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마치 살아 숨쉬는 생물처럼 경제란 변화해가는 것이다. 점점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대기업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겠는가. 가능한 한 충격을 줄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 경제란 혁명적인 발상에서 나오는 ‘청산’이나 ‘척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흰 백지에 그릴 수 있는 그림은 더더욱 아니다.

1999.12.09. 경향신문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벤처

인하대 경영학과 박기찬 교수


DJ 정부에서는 한국경제의 대기업 체질을 중소 벤처기업 체질로 전환시킨다는 '부품교체식'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재벌해체와 기업도산으로 이곳저곳 멍들고 구멍난 현장경제를 벤처기업들로 메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벤처타운이 실리콘밸리처럼 육성되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체질전환에 요구되는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전시 행정때문에 또다시 공적자금만 축내면서 사이비 '떳다방' 벤처인들만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YS정부때부터 매년 3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중소기업 육성에 투입해왔다. 단지 DJ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 육성이라는 단어 하나 더 첨가했을 따름이다. 일본처럼 정보기술과 인터넷 사업에 핵심역량을 결집시켜주는 벤처 정책의 방향도 없기에 서류만 갖추어 제출하면 목욕탕이나 정육점에도 벤처자금이 지원될 수 있다. 그래서 연줄 따라 돈은 새나가는데 내세울 벤처타운 없이 21세기 한국 경제를 벤처로 승부하겠다는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
재벌 등 대기업은 해체대상이 아니라 벤처기업의 기술과 사업을 구매할 수 있는 주요 고객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IMF체질에 맞춘 부채비율 200%에 연연하기 보다 오히려 대기업부터 사내 벤처사업을 활성화 하도록 유도하는 산업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1999.12.02. 한겨레신문

‘벤처 대그룹이 뜬다’


“벤처라고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세계시장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기술력으로 무장한 알짜 벤처기업들이 파죽지세로 사업영토를 넓혀가며 대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 분사나 합작투자,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덩치를 키워가는 이들 벤처그룹은, 외환위기라는 태풍에 침몰한 재벌의 공백을 메우면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벤처그룹은 기존 재벌과는 판이한 발전전략을 구사한다. 돈이 된다 싶으면 아무 사업이나 벌이는 재벌들의 문어발식 다각화와 달리, 이들은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상승효과를 높이는 쪽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한다. 투자에 기반한 회사설립과 자금조달로, 빚얻기에 의존해온 재벌과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걷는다.

감사원, [벤처지원 자금 부실 운영 16건 적발] 발표에 대한 반응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10.26. 동아일보

'가짜 벤처' 정부책임 크다


감사원은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자금이 유령회사 등에 잘못 지원된 사례 16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벤처기업 지원예산 누수가 이정도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실제로는 가짜 벤처기업 및 이들에 정책자금이 돌아가도록 사기적 수법을 동원하는 악질 브로커가 판을 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그래서 벤처기업 지원자금은 눈먼 돈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벤처기업 지원예산이 사이비들에 새나가는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정상적 벤처기업들이 지원받을 몫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격이다. 그래서 옥석을 잘 가려야 하지만 정부는 그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원대상업체에 대한 사전평가체계도, 사후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보니 국민 혈세의 적지 않은 부분이 간단한 서류조작만으로 가짜 벤처기업과 브로커들의 배를 불리는데 흘러든다.
근본적으로는 2002년까지 벤처기업 2만개를 육성한다는 양적 목표에 대랄려 벤처산업의 질적 성장기반을 소홀히 해온데 문제가 있다.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을 실업대책과 연계시키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부실 벤처기업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정부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예산을 따내 외형 위주의 지원책을 펴다보니 체계적 종합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관계부처와 지자체들은 지원의 실효는 둘째치고 지원자금 집행실적을 업적인양 내세우는 전시행정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1999.10.26. 중앙일보

[감사원 실태조사]벤처기업 지원금 '눈먼 돈'?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정책자금이 엉터리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이미 폐업한 유령회사에 지원되는가 하면 개인기업의 빚 청산에 유용된 사례도 감사원 감사결과 밝혀졌다.
감사원은 지난 6월과 7월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정보통신연구진흥원 등을 대상으로 벤처기업 창업 및 육성시책 추진실태를 감사했다. 감사원은 이 결과 16건의 위법.부당사항을 적발했다고 24일 발표했다.
◇ 유령회사에 자금지원
㈜H엔지니어링은 연구진이나 연구개발실적이 전혀 없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인 것이다.
그럼에도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은 이 회사를 '멀티미디어용 고속무선 근거리 통신시스템' 개발사업자로 선정했다. 지원된 돈은 정보화촉진기금 1억6천2백만원. D업체는 2억3백만원의 정보화촉진기금을 융자받은 뒤 폐업했는데도 진흥원은 자금을 회수하지 않았다.
◇ 자격 미달업체에 자금지원
A엔지니어링은 불성실한 사업시행으로 산업자원부로부터 99년 11월까지 정책자금 지원 제한조치를 받은 회사다. 그러나 중소기업청은 이 회사에 중소기업 기술혁신개발사업 지원을 명목으로 정부출연금 4천1백만원을 지원했다.

1999.10.25. 경향신문

벤처지원금 엉터리집행 많다


중소기업청, 정보통신연구진흥원 등 7개 정부 기관의 벤처기업에 대한 창업 및 지원자금이 기준미달업체에 지원되거나 엉뚱한 데 쓰이는 등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24일 감사원에 따르면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은 자체 연구진이나 연구개발실적이 없는 업체가 제출한 엉터리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정보화촉진기금 1억 6천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소기업청은 99년도 중소기업혁신개발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산업자원부가 불성실 기업으로 지정, 정책자금 지원을 제한한 업체를 선정해 4천여만원을 지원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1999.10.25. 한겨레신문

유령·부실회사에 벤처자금 지원 감사원 16곳 적발


유망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조성된 벤처기업 육성자금이 극히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6월부터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 정보통신연구진흥원 등을 대상으로 벤처기업 육성실태를 감사한 결과 16건의 위법 부당사항을 적발했다고 24일 밝혔다.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은 ㅎ엔지니어링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인데도 1억6200만원의 정보화촉진기금을 지원했다. 또 중소기업청은 부실기업인 ㅇ엔지니어링에 41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99년 5월, 부실벤처 책임 논란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05.19. 동아일보

[동아포커스 심층취재]'사이비 벤처' 판친다


정부가 2002년까지 벤처기업 2만개 육성을 목표로 양적 팽창 정책에 치중하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일반 중소업체 중 일부가 벤처기업으로 '문패'를 바꿔달고 정책자금을 타내 재테크를 하는가 하면 이를 부추기는 벤처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업자 O씨는 지난해 초 한 컴퓨터 게임업체를 인수해 이름을 바꿔 벤처기업 지정을 받았다. 그는 그후 10억 여원의 정책자금을 타낸 뒤 빌딩을 매입해 게임방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멀티미디어기기 개발업체인 G사는 지난해 정부로부터 정책자금 1억원을 타냈으나 곧바로 연리 17%짜리 고정 금리상품에 넣어둔 채 이자 차익을 사무실 운영비로 쓰고 있다. 최근에는 자격이 안되는 업체를 벤처기업으로 지정받게 해주고 대출받은 정부자금의 10~30%를 떼어가는 벤처 브로커까지 생겨났다.
창업투자회사도 허위투자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창업투자회사는 지난해 말 A사에 2천만원을 투자한 것처럼 허위계약을 한 뒤 이 돈을 수익증권을 통해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최동규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정부의 벤처기업 양산 정책이 이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하면서 질적 전환을 촉구했다.

1999.05.21. 중앙일보

[기획취재] 벤처기업 지원 헛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서울의 A인터넷. 이 회사는 지난해 벤처기업으로 선정된 뒤 정보통신연구진흥원에서 출연받은 1억3천6백만원의 연구개발비를 이자까지 붙여 토해내느라 허덕인다.
앞으로 3년간 정보통신부가 시행하는 사업에 참여할 자격도 박탈당했다.
국내 I대학 L교수 및 미국의 동종 (同種) 회사와 '실감미디어 인터액션 및 통합미디어 기반의 POE정보시스템' 이란 것을 공동 연구하겠다며 받은 자금을 회사운영비와 사장 개인용도에 써버리다 지난 3월 들통났기 때문이다.
'벤처' 간판을 내걸고 돈을 타 탕진한 사례들 중 일부다.
그런데도 벤처기업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중소기업청의 담당과장은 "잘못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고 말한다.
세계 경제전쟁에서의 경쟁력 확보와 새 일자리 창출 등을 목표로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지원책을 본격 시행한 지 1년. 올해 3조8천억원의 지원예산 (일반 중소기업 포함) 이 책정된 가운데 5월초까지 2천9백개사가 벤처기업으로 등록됐다.
거기에 최근 '2002년까지 2만개 벤처 설립' '코스닥시장 활성화' '벤처기업 범위 확대' 등 잇따른 발표로 벤처붐에 한창 불이 붙었다.
그러나 정책의 야심찬 취지와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운영체계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엉터리 업체에 헛돈을 쓰거나 거꾸로 유망한 회사에 지원을 아껴 중도하차 위기로 모는 일이 적지 않다.

1999.06.07. 경향신문

벤처 육성책 '고무줄 잣대'


중소기업청이 최근 사이비 벤처기업으로 적발한 업체 대표로부터 제소를 당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소내용은 벤처기업 자격요건을 갖췄는데도 중기청 측이 이를 일방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 적발 과정에서 중기청이 곳곳의 거래업소에다 부실업체라고 알려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는게 제소업체 대표의 주장이다.
다소 의아한 것은 중기청이 사이비 벤처기업이라 적발한 업체가 김치공장이라는 점이다. 김치가 분명 '고위험 고수익' 상품은 아닌데 중기청이 이 업체를 벤처로 지정해 갈등을 빚고 있는게 어찌보면 코믹하게 느껴진다.
중기청과 김치공장 사이의 쟁점은 연구개발비다. 중기청은 매출 5%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할 요건을 김치공장이 지키지 않아 벤처 지정을 취소했다고 설명한다. 반면 김치공장 측은 인근 모 대학교수들에게 지난 1년간 수시로 연구개발비를 전달했고, 그 규모는 매출액의 5%를 훨씬 넘는다고 맞서고 있다.
중기청이 대학에 연구개발비 명세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자 교수들은 1천만원의 회식비 영수증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같은 분쟁의 빌미는 정부가 제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 2002년까지 2만개 벤처기업을 만들겠다며 숫자불리기에 급급한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인 것이다.
정부는 유흥업을 제외하고 연구개발비가 매출액 5% 이상이면 모두 벤처가 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김치공장이든 단무지공장이든 연구개발비 비율을 5% 이상으로 맞춰 벤처기업 지정을 신청하고 있다.

1999.05.25. 한겨레신문

벤처기업을 흔드는 손


지난 주 몇몇 신문에서 '가짜 벤처기업이 정책자금을 축내고 있다'는 기사를 크게 다룬 뒤, 한 벤처기업인이 기자를 찾아와 한 하소연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이제야 본 궤도에 오르려 하는데, 이런 보도가 연이어 나가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는 얘기다.
일부 언론의 벤처기업에 대한 지적은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는 최근 정부가 신규창업 지원 중심의 벤처지원 정책을 펼치면서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벤처'들이 자금을 타내 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 뿐만 아니라 정책자금 전반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과거 수출대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은 오늘날 5대 재벌이라는 공룡을 만들어 IMF위기 초래의 원인이 됐다. 기존 제조업 중심 중소, 중견업계도 상당한 정책자금을 써오면서 일부는 회사의 외형만 키워 경제위기에 한몫 했다.
두번째 지적은 벤처 컨설팅을 위장한 '벤처 브로커'들이 나타나 대가를 받고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주면서 벤처 기업을 포장해 자금을 따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을 포장해 투자를 따내는 마케팅전략은 기술과 함께 벤처기업의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벤처기업의 산실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기업가, 투자자, 컨설팅업자의 3대 주체가 이끌어가고 있다.
물론 새로 시작하는 분야인 만큼, 엉뚱한 곳으로 돈이 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철저한 사후관리로 적발해내야겠지만, 그렇다고 벤처기업 전체를 매도해 설 땅을 없애는 것은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
경제의 새 살을 만들어내려 가장 활발하게 세포분열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창업 초기 벤처업계다. 이들을 죽이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