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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 1년 후, 세기말이었던 1999년은 특기할 만한 해였습니다. 재벌 개혁을 둘러싼 갈등, IT 벤처 붐과 그 이면의 그늘, 수세에 몰린 노동계와 새로운 복지 체제에 대한 요구 등 향후 20년 간 계속 될 논쟁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한 해였습니다. 당시의 이슈들에 대해 진보-보수 언론의 사설과 칼럼을 비교하며 논쟁 지점을 살펴봅니다.

지난 2년 동안 이 나라 민주주의, 특히 인권의 신장이 괄목할 만큼 실현되었습니다. 합법적이고 평화적이면 어떠한 시위나 집회, 파업도 이제는 원천봉쇄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 거리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졌습니다. 언론자유는 언론인 자신들과 국민들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하여 인정하듯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보장되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은 놀랄 만큼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지금 목격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자유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민주노총이나 교원로조가 합법화되었고, 노동자들의 정치참여와 정치자금 모금도 허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서민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중산층을 튼튼히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회가 안정이 됩니다. 또한 그들의 소득이 늘어나야 구매력이 생겨서 경제도 더욱 좋아집니다. 따라서 정부는 금년에 10조원을 들여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산적 복지를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산적 복지에 따라 정부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월 약 100만원까지 그 수입을 보장하여 생계와 의료, 교육을 뒷받침 해줄 것입니다.

- 1999년 3월 1일, 김대중 대통령 3.1절 기념사 中

절대다수의 국민이 중산층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중산층 육성과 서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인간개발 중심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적극 펴나가겠습니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제 최저 생계비 이하의 모든 어려운 국민에게도 생계, 교육, 의료 등 기본생활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로능력과 의욕이 있는 모든 국민에게는 직업훈련과 평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노인, 병약자, 소년소녀가장 등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큰 폭으로 늘리고, 장애인의 고용과 재활을 촉진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습니다.
의료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제도를 내실화하여 국민들이 평생동안 안심하고 생활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겠습니다.

- 1999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 광복절 축사 中

1999년 2월, 민주노총 노사정위 탈퇴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02.26. 동아일보

경기의 싹을 꺾을 것인가


경제 움직임은 심리적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국이나 노사관계가 불안하면 시장은 즉각 위축된다. 특히 노사관계 불안은 그 자체가 생산차질 등 당장의 경제손실을 낳을 뿐 아니라 투자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 선언과 한국노총의 조건부 탈퇴 움직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노총이 노사정위 테이블을 완전히 떠나서 산하노조들과 함께 물리적 투쟁에 나설 경우 지난 1년간 아슬아슬하게나마 견지돼온 노사정의 평화는 깨지고 말 것이다. 취약하지만 노사문제의 안전판 역할을 해온 노사정위가 와해되고, 곳곳에서 장외투쟁이 벌어지고, 이에 공권력이 개입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엔 타협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경제는 날개없이 추락할 것이다. 이는 누구를 위한 것이 될까.
두 노총은 구조조정과 빅딜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고용보장이 불확실하다고 반발하지만 사측은 사측대로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정리해고 제약'과 '정치권의 노 측 편들기'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한 갈등은 상존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머리를 맞대고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만이 파국을 막는 길이다. 정치권도 무책임한 훈수를 자제하고 노사정의 판이 깨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1999.02.25. 중앙일보

노사 문제 정면 대응해야


구조조정에는 어차피 큰 어려움이 따르지만 경제회생의 해법이 달리 없다는 데서 선진국도 기업구조조정은 기업의 결정에 맡겨두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정부도 치러야 할 시련이라면 정공법적 대응태세가 필요하다. 노사문제는 기업현장에서 당사자 해결의 원칙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노조 달래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며 불법행위엔 철저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동시에 경영자들에게도 정리해고 등에 앞서 법이 정한 회피노력을 준수토록 감시해야 할 것이다.
올봄 노사불안이 경제회복을 더디게 할 개연성은 크나 그렇다고 노사불안이 몰고올 경제의 타격에 과잉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갈등은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드러내놓고 수술을 하는 게 정도다. 그것이 길게 보면 노사관계를 제대로 정립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사의 건설적 타협의 산물이 아닌, 정부나 정치권에 의한 미봉의 결과가 우리 노사 양 당사자를 그릇된 길로 끌어온 예는 많다.
그렇다고 노사정 3자가 손을 놓아선 안된다.
우선 민주노총은 노사정합의의 틀을 벗어나온 데 대한 국민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경제가 가라앉고 국민이 외면해선 노동계도 기댈 데가 없다.

1999.02.25. 경향신문

노사정위 결국 깨지고 마나


각 경제주체들의 고통분담과 협력을 전제로 대타협 끝에 출범했던 노사정위원회가 겨우 첫돌을 맞기가 무섭게 와해되려 하고 있다. 어제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위 탈퇴를 결의한데에 이어 한국노총도 내일 조건부 탈퇴를 선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본란을 통해 노동계의 고통과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양대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는 국가경제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대 노총이 여론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회적 협약기구의 근본틀을 깨려는데 대해 실망과 유감을 금할 수 없다.
노사정위의 해체에 따른 사회경제적 혼란과 국가적 손실은 단순한 계측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노사정위라는 사회적 완충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노사간, 노정간 대립은 물리적 충돌로 이어져 산업 평화가 깨지기 쉽다. 특히 대기업 및 공공부문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빅딜 후유증 등 악재와 맞물려 가뜩이나 불안한 노사관계에 예상할 수 없는 파열음을 낼지도 모른다. 간신히 회생의 불씨를 지펴가고 있는 국가경제가 재기불능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수도 있는 것이다.
양대노총이 이처럼 국가경제를 담보로 노사정위를 탈퇴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로 지적받아 마땅하다. 지난 1년 간의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고통분담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도 상당부분 인정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논의의 장 자체를 부수는 것은 민주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결코 취할 태도가 아니다. 양대노총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공식 논의구조에서 이같은 문제를 당당하게 제기해 기업과 정부, 나아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온당한 방법이다.

1999.02.26. 한겨레신문

노사정위 새 틀 짜야


노사정위가 자기 위상과 기능을 확립하지 못한 채 추락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노사관계의 왜곡된 구도에서 기인된 면도 크지만, 구체적으로 노사정위가 자문협의기구라는 형식과 사회적 합의 요구를 담아내야하는 내용 상의 괴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노사정 사이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여러가지 걸림돌이 가로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뿌리깊은 불신과 날카로운 이해대립 요소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노사정 삼자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 것인가. 민주노총이 요구한대로 '새로운 대정부/대자본 교섭틀'의 구축도 한가지 방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교섭체계나 협상의 구도에 비추어 당장 실현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은 아니다. 아무래도 노사정위가 실질적인 사회협약 기구로서 위상과 기능을 갖출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 현실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자면 노동관계 개혁을 위한 정부의 기본 정책방향이 정해져야 하고, 노사관계 발전에 대한 노사 당사자의 의식과 행태도 크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계의 노사정위 탈퇴 움직임을 '파국'이나 '정면충돌'로 해석하는 등 지나친 우려를 나타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노사정위가 노사관계 개혁의 필수적인 요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사정 삼자기구의 새로운 구도형성을 위한 계기 마련이 더욱 중요한 일일 것이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 4월 파업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04.24. 조선일보


하루 10억 원씩 적자나는 기업의 노조가 봉급은 단돈 1원도 내릴 수 없고,인원도 단 한명도 줄일 수 없다고 한다.
노조측 요구와 주장이 무엇인지는 그동안의 파업과 집회 등을 통해 정부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됐다.그런데 노조측 주장이 시민의 공감대를 사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설령 파업이 장기화되고 운행이 중단되더라도 이를 악물고 참아내자. 그래야 시민을 볼모로 걸핏하면 벼랑끝으로 치닫는 노조의 의도된 전술을 극복해낼 수 있다.

1999.04.22. 동아일보

기어가는 지하철속의 분노

이화여대 경제학과 전주성 교수


요즘과 같이 성장이 위축되어 있는 경우에는 분배와 관련된 갈등이 커질수밖에 없다. 마이너스 성장의 과실, 즉 고통이 고르게 분담된다 해도 싸움이 날 터인데 나만 손해를 더 보는게 아니냐고 느끼는 계층이 많다면 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이 경제 재도약의 기틀이 되고 이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민주사회에서는 노조건 정부건 야당이건 국민이 공감하는 세력이 힘을 받는다. 지하철파업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그 어떤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시민과 전쟁을 선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하철노조는 전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조건없이 파업을 중단하고 시민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정당한 경로를 통해 국민정서에 호소해 국민이 정부에 압박을 가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 계층의 억울한 사정에 공감했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게 해서는 안된다.

1999.04.20. 중앙일보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우선 민주노총 투쟁의 시발이라 할 지하철 파업은 명분 약한 불법파업으로 출발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15일간의 냉각기와 직권중재도 거치지 않은 불법파업이다.
파업의 핵심쟁점인 구조조정문제에서도 노조는 명분을 잃고 있다. 하루 10억원의 적자를 내는 지하철공사로선 어떤 형태로든 뼈를 깎는 고통분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00년까지 2천여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근무형태도 현행 4조 3교대에서 3조 2교대로 하자는 안을 세운 것이다.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그런데도 노조는 오히려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일체의 구조조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지난 10여년 동안 유사한 형태의 불법파업에 익숙하게 살아왔다.그러나 그런 익숙한 눈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작된 파업투쟁에서 어떤 명분도 찾아 보기 어렵다.
이번 파업은 시민의 발을 묶는 단순 차원의 고통이 아니다. 지켜야 할 법을 무시하고 세워야 할 원칙을 무너뜨린다면 간신히 넘기고 있는 위기상황의 경제가 재추락할 수 있는 위험마저 안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기회에 지켜야 할 법이 무엇이고 양보할 수 없는 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긋는 용단이 필요하다.

1999.04.22. 경향신문

지하철 타기가 겁난다


시민들의 불안심리는 정치권의 혼란, 대한항공기의 추락사고, '도풍' 사건 등 사회적 어수선함과 함께 '사고공화국'의 오명과 맞물려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실직과 임금삭감 등 온갖 고통을 감내하는 시민들이 왜 "불안해서 지하철을 타지 못하겠다"는 공포감까지 부둥켜 안고 살아야 하는가. 서울지하철 노조는 즉각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물론 지하철의 비정상운행은 노조의 파업 선언때부터 예견됐으나 그 정도가 지나치다. 검수 정비작업의 거부와 대체인력의 투입에 따라 조작미숙 전동차 결함, 인위적 장애 등으로 이곳저곳에서 운행사고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4호선 구간에서는 출력부족으로 승객들이 차에서 내려야 했는가 하면, 전동차 윗부분에서 연기가 솟아 하차를 요구당한 시민들이 항의하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노조가 할 일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이번 파업은 명분도 없을 뿐더러 쟁의절차도 밟지않은 불법파업으로 시민들의 공감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섭권을 위임받은 민주노총도 총력투쟁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파업철회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해결 노력을 보이길 바란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동자계층의 불편과 불안도 헤아려야 한다.

1999.04.20. 한겨레신문

지하철 파업 협상으로 풀라


서울 지하철 파업의 전말과 쟁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서울지하철공사가 안고 있는 큰 규모의 적자 요인과 엄청난 액수의 부채에 비추어서는 어떤 형태로든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시와 지하철공사가 노조쪽과의 성실한 교섭이나 협의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구조조정을 강행하려는 방식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아무리 구조조정이 절실하다하더라도 고용조정(정리해고)이 수반되는 경우에는 그 시행방법이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단체협약에 규정된 노동조건이나 복지후생비를 저하시키고 삭감하는 일은 법을 거스르는 행위에 든다.
서울시와 지하철공사의 공세에 밀려 수세에 놓인 노조쪽으로서는 집단행동 아니고는 달리 대응할 방책을 마련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하철 파업을 대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음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아래서 전반적인 위기의식을 느끼는 일반 국민들의 눈에 이번 파업이 자칫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지하철공사의 경영혁신이나 합리적 구조조정을 위한 대안을 적극적인 자세로 제기해야한다는 지적도 결코 내쳐서는 안될 것이다. 지하철 파업의 성격이야 어떻든 그 타결은 협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물리력에 의한 강제진압은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되듯이 엄청난 후유증만 남길 뿐이다.

사회 양극화와 생산적 복지 담론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11.12. 동아일보

빈곤층 1000만명


정부는 분배구조 악화와 중산층 몰락을 절대로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빈부격차 확대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생존형 범죄의 증가와 가정파괴, 개인파산 등 사회병리현상을 촉발한다. 자칫 정치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져 국가사회발전의 역동성을 잃게 된다. 또 빈부계층간의 위화감은 경제회생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부가 국민복지향상과 공평분배쪽에 눈을 돌린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국민의 최저생계는 국가가 보장한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이나 세금 몇 푼 깎아주는 중산층 안정대책 등으로는 부족하다. 우선 탈출불가능한 '절망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현재의 실업대책은 실직자 위주로 빈곤층이 소외되어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에서 찾아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일자리는 정보화 지식기반산업에 기대할 수 밖에 없는 만큼 산업, 교육, 고용 등의 정책이 이에 맞춰 이뤄지고 시행에 옮겨져야 한다. 이와 함께 빈곤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달래주고 소득분배를 개선하기 위한 폭넓은 세제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은 '미국이 망한다면 그것은 인종문제가 아니라 분배문제로 인한 계층간의 갈등이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1999.08.25. 중앙일보

국민신뢰받는 복지정책을

이화여대 경제학과 전주성 교수


김대중 (金大中) 정부가 경제위기극복의 1년 반을 뒤로 하고 분배정의와 사회안정에 눈을 돌린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잘한 일이다.
첫째, 형평한 분배는 지속적 성장의 기틀이 된다.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형평을 이율배반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성장의 과실분배가 공평하지 않아 계층간의 갈등과 사회불안정이 증폭되면 이익집단의 정치논리에 휩싸여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임시방편적 조세.지출정책이 채택되기 쉽다.
둘째, 김대중 정부가 중산.서민계층을 기반으로 하는 진보정당의 기치를 내세운 것은 정당이 정강과 정책으로 승부하는 바람직한 정치논리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잘한 일이다. 민주주의나 시장경제와 같은 보편적 가치는 정강으로 어울리지 않는다.정치권은 다수의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책정당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야당도 지엽적인 논쟁에 매달리지 말고 나름대로의 색깔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중산.서민계층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현 정부 복지정책의 문제점은 그 내용보다는 집권정당의 진정한 의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경제위기로 소득분배가 악화된 것은 누구나 느끼지만 부자들 세금 좀 더 내게 한다고 빈부격차가 해소될 일이 아니다. 계층간 소득격차를 줄이는 문제는 세금을 내기 전 소득분포 자체의 변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는 1차적으로는 구조적인 복지제도의 변화, 궁극적으로는 중산.서민계층이 보다 나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여건 조성에서 찾아야 한다. 국민기초생활 보장, 저소득층 학비지원, 농어민 대책 등 개별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는 정책들이 과연 국민들에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복지대책으로 비쳐질지, 선심정책으로 비하될지는 집권층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1999.08.18. 경향신문

중산층 중심사회 건설을 위한 조건

동아대 사회학과 박형준 교수


광복절 국가 비전의 중요한 내용은 중산층 중심사회 건설이다. 절대 다수 국민이 중산층이 되도록 하겠다고 대통령이 선언한 것이다. 물론 중산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가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이지만, 대통령이 상정한 중산층이란 대체로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궁핍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적절한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는 층으로 이해된다.
이를 위해 완전고용 실현, 주택보급률 100%, 국민기초생활 보장, 교육기회 확충, 세제 개혁 등을 정책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정책수단이 실현된다면 빈곤층의 삶을 안정시키고 삶의 기회를 넓혀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정확히 말해서 서민층 생활안정화 대책이지 적극적인 중산층 정책이라 말할 수는 없다. 여기서 현실에서 제기되는 중산층 문제의 '아킬레스건'은 어디에 있는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경축사에서도 강조한 지식기반경제 및 지식국가의 사회메커니즘이 과연 '중산층을 쌀지우는 방향'으로 움직이는가? 숱한 지식정보사회론자들의 지적처럼 지식정보사회가 '우대'하는 집단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지식 전문가, 또는 고도 지식근로자이지 중산층 전체는 아니다.
특히 imf 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의 주변화 현상은 심화되어, 과거 조사에는 70% 이상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그 수치가 50%대로 떨어지고 있다.
요컨대 냉엄한 경쟁을 전제로 하는 지식기반경제와 평등 개념이 내포된 중산층 중심사회 건설이라는 두 가지 비전은 현실에서 적지 않은 긴장과 딜레마를 야기한다. '제3의 길'론을 비롯해 선진국들의 정책기조 논쟁이 일어나는 대목도 이 지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의 긴장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는가가 중산층 중심 사회 슬로건의 현실적 설득력을 좌우할 것이다.

1999.08.19. 한겨레신문

기초생활보장제 철저 준비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으로, 복지시책은 지난 40년 동안 시행해온 생활보호법에 따른 시혜적 단순보호 차원에서 탈피해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전환된다고 정부는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생계비 지원대상자를 근로능력 여부, 나이 등에 관계없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모든 가구로 넓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안전망 기능을 하기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는 현재의 공적 부조제도를 선진복지국가 형태로 바꾸는 것이라 평가할 만하다. 복지부는 또 이번 시책이 생산적 복지정책이라고 강조한다. 즉 지원 대상자 가운데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가구별 자활/자립 지원 계획을 수립 시행하는 한편, 근로의욕 감퇴방지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노동은 하지 않고 복지시혜만 받으려는 선진국형 '복지병'의 부작용을 방지하려는 당연한 조처라 하겠다.
그러나 이 제도가 순탄히 추진되기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본다. 우선 예산당국 등 경제부처들은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복지수준을 대폭 확대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국민의 기대욕구를 지나치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하여 시행시기를 될 수록 늦추려 할 것이다. 이런 경제부처의 생각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어느날 느닷없이 실업자로 전락하여 가진 재산 다 까먹고 복지제도 미비로 기초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고려해서 이 제도를 최대한 빨리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빡빡한 점을 들 수 있다. 새 제도의 체계적이고 완벽한 준비를 위해 최저생계비 조사연구사업, 사회복지 전문요원 증원 및 교육, 정확한 대상자 선정 및 급여산정을 위한 조사, 자활지원계획에 대한 연구 사업 등 선결작업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제도가 차질을 빚지 않도록 정부 당국이 철저히 준비하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