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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17년부터 IMF에 20년이 지난 기록들에 대한 비밀해제를 요청하고, 국가기록원에 찾아가 당시 관료들이 남겨놓은 기록을 수집해 디지털화 했습니다. 기업, 노동계, 연구기관, 언론보도 등 웹 상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외환위기의 기록을 먼저 살펴보았던 연구자 선생님을 찾아가 기초자료들을 기증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총 5300여건의 자료가 2019년 9월 아카이브에 1차로 등록되었고, 2020년 12월 IMF로부터 송부받은 609건의 기록이 등록되었습니다.  

외환위기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한 작업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2018년,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하면서 외환위기를 재조명하는 글이나 영상들이 쏟아져 나온 바 있습니다. 이렇게 외환위기가 주요한 사건으로 재조명 받고 있긴 하지만, 외환위기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발전적 논의를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외환위기 당시의 주요한 기록들이 그 소재를 쫓기 어려울 정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이미 2017년에 IMF를 대상으로 한국 외환위기(Korean Crisis)에 대한 문서들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외환위기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IMF 측의 자료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연구계획서를 보내고 20여통의 메일을 주고 받는 과정 끝에 IMF에서 비밀해제 작업에 들어간 문서들은 2년반만인 2019년 12월 20일이 되어서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보유한 자료라고 해서 수집이 용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가기록원 서고에 직접 찾아가 정부 문서들을 열람해 보았지만, 이 문서들 역시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문서들을 하나 하나 직접 살펴보고, 제목부터 내용까지 정리하는 노가다를 할 수 밖에 없었죠. 목록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국가기록원에서 볼 수 있는 자료들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카이브 작업 중

누구보다도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기획재정부는 정보공개 요청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20년이 넘은 문서들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자료가 공개될 경우 국익침해가 우려된다거나 외교 문제에 관련한 문서라는 이유로 거의 모든 자료를 비공개 처리하였습니다. 정보공개센터가 자료를 공개하라고 행정심판을 하고 나서야, 기획재정부가 뒤늦게 해당 자료를 국가기록원에 이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작 국가기록원에 보냈어야 할 자료들을, 기획재정부는 별다른 근거 없이 십수년 간 가지고 있던 셈입니다. 국가기록원 역시 기획재정부에서 이관된 외환위기 관련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시민들이 외환위기와 관련된 자료들을 제대로 살펴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당연히 정부 차원에서 보관하고 있어야 하지만,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주요 문서도 많았습니다. 'IMF 행'이 처음 거론된 날짜를 보통 1997년 11월 7일이라 말하곤 합니다. 이 날 열린 외환시장 대책회의에서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이 제출한 보고서에서 IMF 금융지원이 처음으로 거론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IMF 행'이 거론된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한국은행에서는 그런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황당한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아카이빙을 시작하기 전보다, 직접 진행하면서 더욱 강하게 외환위기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고, 언론기사에 언급되는 자료들 역시 찾기 힘든 실정입니다. 국가기록물 관리를 담당하는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97년 외환위기를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하면서 사건과 관련한 기록물 목록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관련 기록물이 54건에 불과합니다. 이 54건의 기록물 역시 대부분 외환위기 이후,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리한 보고서들입니다. 정작 외환위기가 어떻게 촉발되었는지, 위기 이전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IMF와의 협상 과정은 어떠했는지 등의 기록들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시민들이 외환위기의 전말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실태입니다.

이처럼 자료수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차곡차곡 아카이브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라는 책으로 외환위기 전후의 과정을 설명한 지주형 교수님은 아카이브 작업에 대한 조언과 더불어, 아카이브를 위해 자신이 정리한 자료들을 제공해주셨습니다. 아카이브 전문 기업인 아카이브랩에서는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자료를 정리하고, 구성해야 하는지 도움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외환위기 아카이브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신 덕에, 정부 문서에서부터 노동조합의 문건에 이르기까지, 5천3백건에 달하는 자료들을 모아 아카이브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12월 현재 IMF기록 609건을 추가 등록하였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단순히 기록을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다양한 전시 컨텐츠를 업데이트하면서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은 과연 적절했는지 시민들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97년 외환위기가 단지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 사회를 만들어낸 현재진행형의 사건임을 드러내는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합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계속 내용을 채워나갈 외환위기 아카이브에 대해 많은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