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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11월 IMF 구제금융과 함께 시작된 기업의 도산과 대량 해고, 일자리 감축은 노숙이라는 극단적인 빈곤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었습니다. IMF의 대책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마주했던 빈곤의 문제를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와 함께 짚어봅니다.

1998년 성탄절 아침 용산역 광장. 실직자들이 무료급식을 이용하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IMF 이전 건설일로 돈을 벌어 다세대주택도 한 동 소유하고 있던 윤 씨¹는 IMF를 전후해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그는 IMF 직전 일거리도 부족하고 체력도 떨어져 다단계에 손을 댔다고 한다. 돈만 잃고 말았으면 됐을 것을 카드빚을 져서 가족들과 원수가 된 것을 가장 후회한다. 가족과 헤어져 거리에 나온 뒤에는 핸드폰도, 주소도 만들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빚을 갚으려면 빚보다 더 지긋지긋한 독촉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근 10년간 2천만 원을 갚았다. 원금은 거의 갚았지만 힘닿는 만큼은 더 갚고 끝내겠다는 것이 윤 씨의 각오다.

IMF. 그 시기를 겪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화를 갖고 산다. 금 모으기에 동참한 애국적 경험, ‘아나바다’운동에 일조한 기억, 해고나 폐업으로 힘겨웠던 이야기나 ‘위기를 기회로’ 삼은 영웅적 스토리. 한국은 IMF를 모범생으로 졸업했고,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 씨는 지금도 오롯이 자신의 노동으로 IMF 시기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1) ‘윤 씨’는 2011년 빈곤사회연대가 진행한 ‘저임금과 빈곤의 상관관계’에 인터뷰 참여자의 가명이다.

IMF의 대책에서 제외된 사람들

기업의 도산과 대량 해소, 일자리 감축은 노숙이라는 극단적인 빈곤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었다. ‘IMF 노숙자’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그 파급력은 컸다. 실직 때문에 노숙까지 이르게 된 사람들은 이전부터 취약한 상황에 있었던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근로소득이 중단되는 순간 빈곤을 피할 수 없는 많은 사람에게 IMF는 빈곤의 위협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실직 후 금리생활자가 될 수 있는 사람과 일용노동자의 실직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실업이라는 동일한 위협 앞에 양상과 해결방식은 차별적이었다. IMF 실업자 대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었다.2

첫 번째는 고용보험에 가입되어있던 대기업 직원, 두 번째는 고용보험이 없던 해고자, 세 번째는 IMF 노숙자다. 첫 번째 부류는 기존 임금의 70에서 80%의 실업수당과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부류는 공공근로에 참여하거나 저임금 노동이 필요로 하는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다시 둘로 나누어졌다. 노숙인 가운데 ‘IMF 노숙자’는 자활사업 등 실업정책의 고려 대상이 되었지만 장기 노숙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주거와 취업 대책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병리적인 노숙자일 뿐, 취업이나 사회 복귀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였다.

IMF를 계기로 도입된 대표적인 복지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기존 생활보호법과 달리 근로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수급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정되었다. 생활보호법이 65세 이상, 20세 미만 그리고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신청자격을 한정했다면, 기초생활보장법은 그 대상을 연령이나 장애유무와 관계없이 전 국민으로 확대한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법 제 1조에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헌법 34조의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표현과 달리 모든 이들의 권리로서 복지의 보장을 명시한 진일보한 법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 9조에는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 할 것을 조건”으로 급여를 보장한다는 모순된 조항이 있다. 무엇보다 주소지가 없는 사람은 수급신청을 할 수 없다. 거리에서 노숙중인 사람들,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과 호적이 등록조차 된 적 없는 이른바 ‘부랑아’의 급여신청권은 처음부터 제한적이었다.


2) <복지의 배신>, 송제숙 (2011)

복지에 침투한 신자유주의

이렇듯 IMF 이후 실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기존의 직업 위계를 고스란히 답습했을 뿐 아니라 ‘취업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을 복지정책의 대상에서 분리해냈다. 이러한 정책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주거 지원은 노숙 6개월을 경과한 사람은 지원하지 않는다. 사회 복귀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다. 주소지가 없는 사람은 주거급여를 신청할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수급자들의 참여기간은 3년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자활사업 참여에 따른 ‘참여금’3 은 2019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 대비 57~74%에 불과하다. 자활사업 참여자는 최저임금의 절반에서 3분의 2밖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청소나 쌀 배달, 세차, 요양보호사 등의 일을 수행해야 한다.

일련의 정책은 이른바 ‘활성화’ 정책으로 명명된다. 근로 의욕과 노동능력이 ‘비활성화’된 상태의 빈곤층의 역량을 ‘활성화’해 스스로 탈빈곤을 쟁취하게끔 한다는 것이 목표다. 여기엔 이런 가정이 있다. 빈곤층은 복지에 안주한다, 복지에 안주한 빈곤층은 결코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 징벌적 제도 운영을 통해 그들을 ‘활성화’하는 것이 진정 그들을 돕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제도 운영은 근로 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사회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최초의 합의를 교묘히 역행하고 새로운 규율을 던진다. 스스로 증명하라, 도움 받을 가치가 있는 빈민이라는 것을!


3) 자활사업 참가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일자리지만 최저임금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먼 복지

흔히 복지의 뼈대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이라고 한다. 사회보험은 사회보험에 가입한 가입자들의 생애에 발생하는 위험에 함께 대처한다. 2019년 8월 현재4 정규직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87,5%인데 반해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39.9%다. 건강보험은 각각 91.5%, 48.0%, 고용보험은 87.2%, 44.9%로 각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은 68.3%에 불과하다.5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은 영세사업주가 보험료 부담을 꺼리거나, 낮은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노동자들 역시 가입을 원하지 않기도 한다.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는 사회보험의 혜택에서도 더 멀리 있다.

가난한 노동에서 탈락한 이들이 빈곤을 만났을 때 복지의 관문은 무척이나 옹색하다. 어려울 때 연락만 하면 도와준다는 플랑카드가 동네 곳곳에 나부끼고, ‘긴급복지’니, ‘한부모 가족 지원’이니 ‘청년정책’이니 이름은 다양하지만 막상 신청하면 안 된다는 사유가 많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 이하 모든 빈곤층을 포괄해야 하지만 최저생계비 이하 절대빈곤층이 7-8%로 추정되는 것과 달리 기초생활 수급율은 3-4%사이를 오간다. 가족의 부양을 우선으로 하는 ‘부양의무자기준’은 사각지대의 핵심 원인으로 지적된다. 재산, 소득 기준은 무척 낮고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근로 능력이 있다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추정만으로 빈곤층을 위한 최종적 복지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

‘애매하게 가난한 건 쓸데가 없는 상황'6은 사람들을 고리의 대출로, 열심히 일할수록 상황이 악화하는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으로 내몬다. 근로소득이 중단되는 순간 빈곤을 피하기 어려운 사회보장제도의 부재 상황은 50%에 육박하는 노인 빈곤율을 낳았다. 내가 어려움에 빠져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과 불안을 낳았고, 그러니 각자도생만이 모두의 윤리가 되는 사회만 남았다.


4) 청와대 일자리상황판 (https://dashboard.jobs.go.kr)
5)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 고용노동부, 2019년 4월
6) <여중생A>, 허5파6, 76화 발췌

윤 씨의 시간은 홀로 흐른다

윤 씨는 지금의 가난은 변명의 여지없이 본인의 선택이라고 반복해서 반성했다. 한 평 반 남짓한 그의 쪽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마음은 반발감에 요동쳤다. 아니오, 당신은 원래 높은 확률로 가난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학교를 빠지고 일해야 했던 빈곤 가정에서 자랐고, 위기에 빠졌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지인이나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자산이 없었으므로.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사람을 대기업 부장으로 위조해 대출해주던 은행과 브로커의 행각을 눈치 채지 못 할 만큼 정보력이 적었으며, 대출받은 천만 원 중 삼백만 원을 그 자리에서 떼이고도 그저 성실히 갚아야 하는 일로 알았던 삶이었기 때문에. 약할수록 도움도 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세계에서 당신은 가난하지 않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린 시절 염증 치료를 받지 못해 거의 녹아내린 그의 양쪽 고막, 십수 년 노숙 생활이 새겨진 약해진 육체, 쉰 적 없는 두꺼운 손과 가벼운 주머니는 IMF 전에도 후에도 언제나 그의 것이다. 윤 씨의 IMF는 어쩌면 윤 씨의 태초로부터 있었으며, 그로 인해 오롯이 그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는 여전히 혼자의 노동으로 IMF를 메꾸는 중이다.

집필자 | 김윤영
반(反)빈곤 운동단체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정, 사회보장제도 확대와 공공성 강화, 강제철거 중단의 요구를 걸고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등 도시에서 쫓겨나는 이들과 함께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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