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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함께 찾아온 경제구조 개편과 기업 구조조정은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노동자의 해고와 재배치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노동유연화 정책이 도입되었고, '비정규직'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였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하청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어갔는데요, 여성 노동시장의 변화를 통해 바라본 외환위기 이후 노동문제를 민주노동연구원 정경윤 선생님과 함께 짚어봅니다.

98년 1월 15일 은행권의 여성노동자 우선해고 문제제기를 위한 기자간담회

98년 1월 15일 은행권의 여성노동자 우선해고 문제제기를 위한 기자간담회(사진:여성민우회)

‘응답하라 1988’ 드라마를 기억하시나요? 드라마의 주요 등장 인물이었던 보라와 덕선이는 IMF로 인해 명예퇴직으로 직장생활을 정리해야 했던 아버지를 지켜보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직장을 갖게 됩니다. 과연 보라와 덕선이는 아니, 그 시대를 거쳐 지금에도 살아가고 여성들은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외환위기 이후 20년, 비정규직과 여성 노동자

1990년대를 거치며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증가하여 2004년 50%에 진입, 2019년에는 53.5%를 기록합니다.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997년 76.1%→2019년 73.5%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여성은 1997년 49.8%→2019년 53.5%로 상승하고 있어 대비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증가를 가속화시킨 주요 원인은 대학진학률의 증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15세 이상 여성 경제활동인구에서 대졸이상 비중은 1997년 12.0%로 제일 낮은 반면 2019년에는 35.5%로 고졸(35.6%)과 비슷하게 높게 나타났습니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변화 추이(단위: %)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변화 추이(단위: %)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그렇다면 경제활동참가율이 상승한 만큼 여성의 경제적 지위 또한 높아졌을까요? 1990년대 이후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1997년 전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노동시장 유연화는 비정규직 도입을 통해 고용불안정을 증가시켰고 노동시장에서의 젠더불평등도 심화시켰습니다. 임금노동자 중 여성 상용 비율은 1997년 38.4%→2019년 62.5%, 임시·일용은 61.6%→37.4%인 반면, 남성 상용 비율은 1997년 64.6%→2019년 75.2%, 임시·일용은 35.4%→24.8%로 나타나 여성 임금노동자가 남성보다 상용, 임시·일용(임시>일용) 모두 높게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계청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8월)를 통해서도 여성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2003년 기준 임금노동자 중 여성 비정규직 비중이 39.6%였는데 2019년에는 45.0%가 됩니다. 남성 비정규직 비중이 2003년 27.6%, 2019년 29.4%인 것과 비교하면 아주 높게 나타납니다. 단시간 노동자 비중은 여성이 2003년 74.3%→2019년 73.2%로 남성 25.7%→26.8% 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여성 상용, 임시, 일용 노동자 비중 변화 추이(단위: %)

여성 상용, 임시, 일용 노동자 비중 변화 추이(단위: %)

남성 경제활동참가율 변화 추이(단위: %)

남성 상용, 임시, 일용 노동자 비중 변화 추이(단위: %)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낮은 지위는 성별임금격차에서도 드러납니다. 한국은 OECD 내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국가로 매년 꼽힐 만큼 우리나라의 성별임금격차 문제는 심각합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1997년 37.5%, 2009년 41.0%, 2019년 35.6%로 성별임금격차가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 수치에는 구조적으로 성별로 집중 산업·직종이 나뉘어져 있는 상황은 고려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을 살펴보면 특정한 직군 자체가 다른 직군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고, 여성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저임금 직종에 집중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2018년 직종의 대분류별로 여성 비율이 큰 직종을 살펴보면 ‘서비스 종사자’(66.9%), ‘판매 종사자’(50.8%), ‘단순노무종사자’(49.5%), ‘사무종사자’(48.6%),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48.3%) 순으로 나타납니다. 이 중 1~3순위인 세 직종의 비정규직이 전체 비정규직의 57.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 집중되어 있는 서비스업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7년 56.0%→2019년 62.4%로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질 낮은 일자리로 만들어져 결국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2018년 직종 대분류별 여성 노동자와 비정규직 비율(단위: %)

2018년 직종 대분류별 여성 노동자와 비정규직 비율(단위: %)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양극화와 외환위기

서비스업의 질 낮은 일자리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970년 이래 세계자본주의 경제구조의 서비스화가 이미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농림어업의 1차 산업, 제조업 중심의 2차 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3차 산업으로 소위 산업의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업구조 변화는 고용체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산업구조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외환위기 충격은 한국에서 특정 산업이 쇠락하고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너무 빠르게 받아들이도록 강제했고, 이후 양극화 문제와 경제 및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문제를 심화시켰습니다.

농림어업, 제조업, 서비스업 GDP 비중 변화(단위: %)

농림어업, 제조업, 서비스업 GDP 비중 변화(단위: %)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IMF구제금융 협상 이후, 정부는 1998년 2월 노동시장 유연화 차원에서 파견을 허용하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2006년 11월 비정규직 보호라는 이름으로 2년 이상 일하면 사용주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을 제·개정했지만 이 역시 사실상 사용주가 2년 이내에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게 했고, 고용불안을 가중시켰습니다.

정부가 산업적 효율성의 논리에서 노동유연화 정책을 시행하는 동안, 여성노동자들은 같은 일터에서 우선순위로 해고되었고, 이후에는 언제든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조건이 갖추어진 저임금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에 진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노동자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고용 창출이라는 이름으로 일자리 양적 증가를 말하지만, 일자리 질과 젠더 불평등에 대해서는 중점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의 법령, 정책에 여성 및 여성의 시각을 적극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2014년 5월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성주류화 조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젠더불평등의 문제는 경제위기라는 재난 시기 바로 드러납니다. 재난은 한 사회의 누적된 취약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인해 여성 비정규직이 증가했다면, 2020년 코로나19 재난 시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돌봄서비스업과 콜센터 등과 같이 여성 집중 업종의 노동자들은 일터에서의 안전도 법·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채, 감염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평등한 일터, 평등한 사회를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질 낮은 일자리를 강요받고 있음에도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1990년대를 거쳐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증가하면서 여성들의 노동조합 조직률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1.8%(2018년)로 매우 낮지만 전체 노동조합 조합원 수 중 여성 조합원 수의 증가(1997년 19.5%, 2018년 22.5%)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차별 구조의 균열을 여성 노동 운동을 통해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99년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투쟁, 2006년 외주화로 인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맞선 KTX 승무원의 집단해고 무효 투쟁, 2007년 기간제법 악용으로 대량해고에 맞서 저항한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2011년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결성과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투쟁, 2018년 유통서비스업 노동자의 ‘노동안전’ 확보 투쟁, 2019년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설립 강행과 집단해고에 맞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 등 노동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시스템에 대해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기존의 젠더차별 구조의 노동시장을 더 성별로 분절화하고 이중화하는 결과로 만들었습니다. 한편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저출산 시대에 돌입하자 이제 국가와 사회는 여성에게 그 책임과 부담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가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고, 스스로 삶의 주인의 되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여성 노동자의 조직화 된 힘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노동조합의 조직화와 연대하는 소중한 힘이 필요합니다.


참고자료

이덕재, 2018, “ 경제사회양극화와 ‘트릴레마’, 산업구조 및 고용체제의 변동”, 「경제와사회」, 통권 제119호, p. 14~41.
정경윤, 2019,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안전한가?”,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이슈페이퍼 2019-05.
최인이, 2020,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노동의 현황과 성평등 과제”, 「시민사회와 NGO」 제18권 제1호, p315~355.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집필자 | 정경윤
17·18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정책보좌진 경험과 여성학 석사학위와 사회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박사논문에서는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세력의 연대 힘으로 소수정당의 한계를 돌파하는 전략에 대해 연구했다. 지금은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을 거쳐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