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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IMF’로 기억되는 1997년 외환위기는 본질적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발생한, 글로벌한 스케일의 사건이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1997년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과 전개과정, 결과와 그 의미에 대해 짚어봅니다.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 당시 태국 시위사진

한국인들에게 ‘IMF’로 기억되는 1997년 위기는 일국적 스케일의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가 시선을 한국에만 고정할 때, ‘태국 에서 출발한 통화위기’는 한국의 위기를 촉발시킨 한 요인으로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1997년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아시아 적인, 나아가 글로벌한 스케일의 사건이었다. 다만 그것이 각국의 조건과 사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지역적 변이를 보였을 뿐이다.

아시아 위기의 구조와 성격은 대단히 복합적이었다. 장기적으로 형성된 구조에 내재된 취약성이 있었고, 또한 그것을 현실화 시킨 정세적 요인들이 있었고, 또한 그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던 금융적 투기와 전염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위기 의 원인, 처방, 개혁을 둘러싸고 형성된 쟁점들, 가령 내인(内因)이냐 외인(外因)이냐, 국가실패냐 시장실패, 산업적인 요인이 냐 금융적인 요인이냐, 단기적인 요인이냐 장기적인 요인이냐, 정실자본주의가 문제인가 투기자본이 문제인가와 같은 쟁점들 은 문제의 복잡성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웠다. ‘아시아 위기’에 대해서나 ‘한국의 위기’에 대해서나 대개 비슷한 논쟁의 구도 가 반복되었고, 전자는 한국의 위기와 유사한 위기를 겪은 여러 국가들의 경험을 묶어낸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일국적 스케일에 집중할 때, 아시아 위기를 발생시킨 지역적 구도에 대한 이해는 어려워진다.

여기서는 아시아라는 지역적 스케일을 바탕으로 ‘아시아 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포괄적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때 ‘아시아’ 란 ‘중동’부터 ‘극동’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것은 아니며, 세계경제와 밀접히 통합되어 있던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자 본주의를 의미한다. ‘아시아 위기’란 플라자합의 이후 형성된 지역적인 ‘산업적 생산 네트워크’의 질서와 ‘통화-금융적 질서’ 사 이의 구조적 일관성이 무너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먼저 위기 이전 이 지역의 생산과 금융 질서가 어떠했 는지 살펴본 뒤, 거기에 잠재된 위기경향성이 어떻게 현실화된 과정을 살펴본다. 이어서 각국에서 위기가 진행된 구체적 과정 을 짧게 살펴본 뒤, 위기가 남기고 간 지역적 변화에 대해 고찰해 볼 것이다. 전반적인 논의는 밥 제솝과 나이링 섬의 논지를 정리·요약·보충한 것이다(Jessop&Sum,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