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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IMF’로 기억되는 1997년 외환위기는 본질적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발생한, 글로벌한 스케일의 사건이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1997년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과 전개과정, 결과와 그 의미에 대해 짚어봅니다.

동아시아의 생산-금융 질서

큰 틀에서 보자면, 아시아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주의(혹은 개발주의, 발전독재)’의 형성과 해체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발전주의라 함은 자본주의 국가의 관료가 국민경제 발전의 논리에 따라 성장을 최우선에 두고 경제에 깊히 개입하는 시스템을 의미하지만, 이는 무엇보다 발전이 이루어졌던 지역적 구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전후 일본과 동아시아(정확히 는 그 절반)는 미국의 반공 · 발전주의 전략에 따라 세계경제에 통합되었다. 미국은 정치적·군사적 논리에 따라 주요 동맹국의 방어비용을 부담하는 동시에 자국시장을 개방하였고, 수출주도 산업화를 지지했다. 이른바 “초대에 의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공민석, 2019). 특히 1960-70년대를 거치며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등 동아시아의 ‘신흥 공업국(NICs)’들은 차입- 수입-수출-상환, 혹은 해외투자와 연결된 수출지향적인 경제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는 자본의 초국경적 순환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었지만, 이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경제 외적인 조정들은 국민국가를 단위로 이루어졌다. 이들 지역에서 생산 된 상품에 대한 수요는 서구 선진국들의 수요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이들 지역의 시장의 문은 엄격한 정치적 통제 하에 놓여 있었다. 금융시장은 더욱 잘 짜여진 통제하에 놓여있었는데, 이는 정책당국의 신용할당에 따른 선별적 산업정책을 가능케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의 자본주의가 제도화된 형태는 서구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보다 직접적인 개입을 기반으로 한 것이 었다.

1980년대를 거치며 진행된 변화는 보다 많은 경제적 행위들이 국경을 가로지르며 나타나도록 했다. (1) 경쟁의 압력이 높아 지는 가운데, 비용절감을 위한 지역적 협력의 중요성이 늘어나게 되었다. (2) IT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생산과 금융 양쪽 모두 에서 보다 신속한 정보전달이 가능해졌다. 통합된 시장을 기반으로 부흥과 위기가 나타나는 시점이 동조화 되었다. (3) 1970 년대 중엽부터 자유로운 상품교역과 자본이동의 통제라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틀이 무너지고, 1980년대에 접어들어 세계 각 국의 경제정책과 이념, 제도 상에 신자유주의적인 전환이 발생했다. 동아시아에서도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금융자유화가 시작되었다. (4) 냉전의 해체와 더불어, 동서 양대진영 간의 이념적 대립을 대신해 다자주의적인 지역협력에 대한 관심이 증대 했다. (5) 일본이 지역적 헤게몬(hegemon; 헤게모니의 주도자)으로서 등장하는 한편, 다른 동아시아 신흥국들이 세계경제에 서 중요한 플레이어로서 부상했다. (6) 미일 간 무역적자가 벌어짐에 따라 막대한 잉여가 일본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러한 상황들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생산질서와 금융질서 간에 보완적이고 안정적인 관계가 출현하는데 이바지했다. 일본 주도의 생산 질서는 동아시아를 세계경제와 연결하는 구조를 형성했다. 1970-80년대 세계경제의 침체 및 신자유주의의 부상에 힘입어 동아시아의 성장을 뒷받침했던 냉전적 국가질서가 변화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 하청네트워크를 통해서 예외적인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1985년 미국과 일본 간에 체결 된 ‘플라자 합의’였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이 합의는, 지속적으로 누적되어온 대일 무역적자를 반전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를 대폭 절상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져 미일 간의 ‘무역 불균형’이 시정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일본의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만회하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수출시장의 보호주의적 조치들을 우회할 방도를 고심했고, 갈곳을 잃은 잉여자본은 ‘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일본은 국내 기업들의 하청망을 국외로 확장하여 일본의 본사와 현지 자회사, 현지의 관련 회사들을 아우르는 초국적인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다.

일본이 주도하는 지역적 생산 질서는 ‘기러기떼’ 모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일본이 기술적 사다리의 정점에서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부품을 공급하면, 한국과 대만은 고부가가치를 가진 중간재를 OEM 방식으로 생산하고, 홍콩과 싱가폴이 서비스 센터로 기능하는 한편, 말레이시아, 태국, 차이나는 노동집약적인 조립공정을 맡는다. 이렇게 생산된 반도체·전자·섬유 등의 제품들은 미국 시장으로 수출된다. 1960·70년대부터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의존적인 성장을 해온 한국 기업들은 플라자 합의 이후로 오히려 일본기업들과 경쟁적인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핵심기술과 자본조달 측면에서 높은 대일의존도를 보이고 있었고, 지역적인 노동분업은 전반적으로 일본계 기업이 공급하는 자본재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발전’과 ‘캐치업’을 내세웠던 동아시아 신흥국들은 기술발전에 사활을 걸고 틈새시장을 공략하고자 했다. 이들 경제가 보인 높은 투자성향과 수출시장의 의존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성으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고투자-저수익-수출의존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외무역과 자금조달이 이루어져야 했다.

미국-달러 주도의 금융질서는 일본 주도의 생산질서를 보완했다. 금융질서를 ‘신용’과 ‘화폐(통화)’라는 두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본다면, 아시아 지역의 주된 신용 공급자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은행들은 일본계 다국적 기업 및 관련 회사에 직접 융자 했고, FDI를 통해 진출한 기업들은 일본의 중간재 수출을 지탱했다. ‘화폐(통화)’라는 측면에 주목하면, 동아시아 신흥국들은 일종의 ‘달러블록 체제’에 속해있었다. 이 지역의 화폐들은 공식/비공식적으로 달러에 페그(일정한 환율로 고정되어 교환)되 어 있었고, 수출입과 관련된 거래들은 달러를 통해 이루어졌다.

달러 기반의 신용 및 통화질서는 일본 주도의 생산질서와 결합되어 안정적 성장을 가능케 했다. 이 지역의 생산품의 최종수요 지는 미국(정확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중심부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달러주도 체제는 환율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줄여주었다. 또한 달러를 매개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환율이 느슨하게 고정되어 서로 간의 경쟁적 평가절하를 방지하고 수출입과 관련된 물가를 안정시켰다. 마지막으로 엔-달러 환율을 절상시킨 플라자합의는 이들 경제가 일본에 대한 수출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이 나라들이 일본 자본을 위한 저렴한 노동력 공급지로서 기능하도록 하였다. 일본 정부가 엔고불황에 대처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실시한 저금리 정책은 대아시아 투자를 한층 더 자극하였고, 신흥공업국들은 일본에서 값싸게 들여온 자금을 바탕으로 다시 대아세안 투자를 확장하였다. 아시아 국가들의 달러고 정환율제는 이러한 자본이동 및 상품교역에 수반되는 환율 리스크를 제거했다. 이러한 점에서 제솝과 섬(Jessop&Sum, 2006)은 1985년과 1995년 사이 동아시아의 생산질서와 금융질서 간의 구조적인 일관성이 수출주의 축적체제가 전제하는 투자-생산-재투자의 동학을 안정화시켰다고 말한다.

동아시아의 생산-금융 질서의 취약성

포스트-플라자 시대 동아시아의 생산-금융질서에는 나름의 안정성만큼이나 고유한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적 과잉생산-과소소비, 과잉유동성, 통화위기의 가능성이다. 동아시아의 생산 질서를 지배했던 ‘발전’의 논리와 ‘따라잡기’의 동학은 소비보다는 (수출지향적인) 투자를 특권화했다. 국가의 수출지향적인 신용할당이 그러했고, 일본계 기업 및 이와 유사한 동아시아 신흥국들이 더 값싼 자원을 찾아 현지에 세운 기업들은 자국기업과의 관련 속에서 높은 수출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전후 세계경제의 중심부에서 발달한 포드주의의 논리는 임금상승을 매개로 투자의 확장과 수요의 확장이 내수경제의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수출주의 경제의 논리 속에서, 임금이나 지역적 소비 수요는 비용상승과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는 요인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생산의 과부족을 지역 내 소비에 의해 소화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된다. 그러나 ‘발전’의 논리와 ‘캐치업’의 동학은 그 주체(국가 혹은 기업)를 불문하고 수익성보다는 생산능력의 확 보를 우위에 두었다. 만일 생산능력의 급격한 신장이 (국민적 조절능력의 범위 바깥에 있는) 해당 상품시장의 성장속도를 뛰어넘게 된다면, 상품의 시장가격은 하락압력을 받게 된다. 한편 생산능력의 확장은 토지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발전의 초기단계에서 이는 전형적으로 도시화와 인구이동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반대로 도시화율이 일정수준에 이른 상태에서는 임금과 지가가 빠르게 상승하게 된다. 이와 같은 요인에 의한 가격하락과 비용상승은 이미 낮은 수준에 있던 이윤율을 더욱 낮출 수 있다. 이윤에 대한 전망이 악화되면, 다소 과잉이었던 투자는 더욱 더 과잉인 것이 된다. 이에 대해 자본이 취할 수 있는 한가지 반응은 생산비용이 더 저렴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이로인해 지역적 수준의 투자수요와 과잉생산은 오히려 가속화 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과잉’에 대한 판단은 어느정도는 상대적이고 상황적이다. 이제민은 “1990년대 한국 기업 들이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상승할 것을 예감하고 투자를 했다면 그것을 과잉투자라고 볼 수는 없”으며 “실제로 1998년 이후 그 때 투자해놓은 산업의 제품을 수출하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이제민, 2016).

금융자유화(자금·자본시장 개방)와 환율 리스크 부재에 기반한 신용에 대한 높은 접근성은 이러한 문제를 증폭시킨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투자와 값싼 신용이 (안그래도 이미 과잉생산으로 흐르게 될 경향성을 지니고 있던) 해당 경제의 흡수능력을 초과하게 되면, 생산과는 무관한 자산시장의 버블이 발생하게 되거나 안정성이 의심되는 대출에도 흘러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돈을 빌려간 기업에게 있는지, 그 기업에게 대출해준 아시아의 은행에게 있는지, 그 아시아 은행들에게 대출해준 국제 금융시장에게 있었는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국제 금융시장의 기관들은 아시아 은행/기업들의 ‘도덕적 해이’와 ‘정보비대칭’을 악의 기원으로 비난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돈을 빌려가 집을 산 중저소득층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의 금융위기는 최고수준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되었던)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 역시 이들이 비난했던 아시아 은행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쨌든 이들이 매수에서 매도로, ‘롱’에서 ‘숏’으로 입장을 전환하게 되면 버블은 결국 꺼지게 된다. 때로는 경기과열이나 집값상승 등에 대한 불만을 다스리려는 하는 정부의 정책전환이 그 신호탄이 되고, 투자자들의 어떤 상황변화가 그것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민스키의 금융불안정성 가설에 따르면 그런 순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도래하게 되어있다. 은행들이 급작스럽게 여신회수에 나섬에 따라 부실채권이 발생 하게 된다. 부실채권에 대한 우려는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이 붕괴하는 ‘뱅크런(bank-run)'의 가능성으로 까지 발전하게 된다. 은행위기는 사업전망이나 재무상태가 양호한 기업들까지 생존을 위협해 위기가 전면화되는데 핵심적인 통로가 된다.

투기적 공격에 따른 통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의미하는 통화위기는 유동성 과잉이나 높은 채무비율과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당시 아시아 국가들이 채택하던 달러에 페그된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율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당국이 끊임없이 시장에 개입하여 보유한 달러를 사고 팔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태국, 홍콩, 싱가폴 등 아시아 경제들이 무역수지 적자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고정환율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위협받게 된다. 무역수지 적자는 앞서 설명한 과잉생산-가격하락-비용상승 경향과 관련이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수출품의 가치가 그것을 지탱하기 위한 국내 투자를 위한 수입에 발맞추지 못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순수출 = 국내저축 - 국내투자). 무역수지 적자는 해당국가 상품 및 통화에 대한 수요가 적음을 의미한다.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계속 내다 팔아야 하는데, 수중에 들어오는 달러는 오히려 줄어든다. 금리인상을 통해 대응할 경우, 투자 위축으로 인해 안그래도 위기에 처한 국내경기가 더욱 얼어붙고 실업률이 상승 하게 된다. 한 나라의 국제수지가 불균형상태를 지속하면 환율의 변경을 예상한 투기꾼들이 공격에 나서고, ‘전염효과’에 의해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다. 당국이 페그제를 포기하고 평가절하를 용인하면, 통화위기는 신용위기와 결합될 수 있다. 해당국 통화가치의 하락에 따라, 그 통화를 기준으로 한 대외채무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급불능에 빠진 기업이 증가하면, 위기는 은행위기로 번지고 재무상태가 양호한 은행이나 기업도 위기에 처하게 될 수 있다. 패닉에 빠진 해외자본이 경쟁적으로 도피에 나섬에 따라, 지역적인 유동성 과잉 국면은 종료되고 악순환은 더욱 강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