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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IMF’로 기억되는 1997년 외환위기는 본질적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발생한, 글로벌한 스케일의 사건이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1997년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과 전개과정, 결과와 그 의미에 대해 짚어봅니다.

위기 이후 지역적 질서의 재편

생산질서와 금융질서 간의 탈구는 일관성 있는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들을 만들어냈다. FDI와 일본의 잉여자금에 기반한 과잉투자는 더이상 지속되기 어렵게 되었다. 일본의 장기침체와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중국의 부상은 지역적인 경제질서의 중 심을 이동시켰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적 네트워크는 미국, 유럽 등 자본주의의 중심부 국가들과 복잡한 연결을 만들어냈 다. 1997년 위기는 ASEAN+3과 같은 새로운 지역협력의 시도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의 독자성 을 강화하려는 것이었지만, 협력의 범위와 원칙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었다.  

일본은 일본이 중심에 서는 경제질서를 복원시키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제출한다. 위기 발생 당시 일본의 기업들과 은행들은 위기를 겪은 지역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일본의 외교적 리더십은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약해지고 있었다. 1997년 9 월, 홍콩에서 열린 IMF와 세계은행의 연례회의에서 일본은 1000억 달러 규모의 AMF, 아시아통화기금의 창설을 제안한다. AMF는 아시아 지역에서 통화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신속하고 유연하게 지원함으로서 통화가치를 회복하고 경상수지 불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자금줄이 되고자했다. AMF는 역내 국가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협력체제였고, 태국, 말레이시아, 대만, 한국 등은 이러한 구상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AMF는 IMF를 우회·대체하는 성격이 있었다. IMF와 미국을 우회하는 새로운 경제적 권역의 부상은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IMF와 미 재무부는 반대의견을 표명한다. 그동안 브레튼우즈 체제가 형성된 이래 미국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차관을 지급하고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부상과 냉전구도의 붕괴로 인해, 더이상 이와 같은 직접적 지원은 국회의 동의를 얻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IMF와 같은 국제기구의 중요성을 보다 부각시켰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IMF가 요구하는 조건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 및 그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을 수호하는데 핵심적이었기 때문이다.

AMF 대신 지역 내 금융안전망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치망마이 이니셔티브(CMI)였다. AMF는 IMF에 버금가는 새로운 기구 를 창설하는 것이지만, CMI의 경우 각 국가간의 개별적 협상을 위한 가이드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CMI는 출범 초기 대출 조건의 90%를 IMF에 연계함으로써 실질적으로 IMF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양자 간의 연계성을 크게 높였다. 미국은 AMF와 달리 CMI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고, 중국 역시 일본의 지역적 리더십을 경계해 AMF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지만, CMI에 대해서는 적극적 지지를 표명했다.

위기 이후 아시아의 산업적 생산의 네트워크는 중국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그리고 금융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세계화에 더욱 통합된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금융적 세계화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자금원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은 미국 시장으로의 상품 수출과 기축통화 달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의 수출의존적 성격은 보다 강화되었고,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로 인해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금융시장에 재투자하였다. 이는 미국이 금융세계화를 지속하고 통화 금융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2010년대 내내 격화된 미중 갈등은 이와 같은 구조의 불안정성을 노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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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신재솔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로, 중앙대학교 사회학과와 리츠메이칸대학 사회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시아 발전의 제도변화와 정치과정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학위논문으로 "韓国輸出主義蓄積体制の構造変動 : 1964年-2018年"을 제출 예정이며, 일본 재정위기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