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록

제목사카키바라 에이스케


바이오그래피1941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국장과 재무관을 역임하면서 일본의 외환 정책을 담당했다. 1995년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으로 부임하여 당시 달러당 79엔까지 급등한 엔고를 '역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내어 엔 약세로 뒤집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언론과 외환 관계자들 사이에서 ‘Mr. 엔’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외환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97년 말 일본 금융정책 담당자로 한국의 금융 위기 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인물이기도 하며, 아시아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미국과 IMF의 시장근본주의를 비판하며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재무부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었다. 1999년 관직에서 물러나 글로벌 경제 연구와 경제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는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로 외환시장 및 신흥국 경제연구에 주력하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참고자원위키피디아


식별번호KC-O-00030


제목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자원유형인물


바이오그래피1941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국장과 재무관을 역임하면서 일본의 외환 정책을 담당했다. 1995년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으로 부임하여 당시 달러당 79엔까지 급등한 엔고를 '역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내어 엔 약세로 뒤집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언론과 외환 관계자들 사이에서 ‘Mr. 엔’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외환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97년 말 일본 금융정책 담당자로 한국의 금융 위기 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인물이기도 하며, 아시아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미국과 IMF의 시장근본주의를 비판하며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재무부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었다. 1999년 관직에서 물러나 글로벌 경제 연구와 경제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는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로 외환시장 및 신흥국 경제연구에 주력하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참고자원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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