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록

제목Timothy Franz Geithne


바이오그래피티머시 가이트너는 196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국제개발처와 포드 재단 아시아 프로그램 담당자로 일했기 때문에, 가이트너는 어린 시절부터 인도와 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살았다. 1983년 다트머스 칼리지를 졸업했으며, 1985년에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경제학과 동아시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재무부에서 중국어, 일본어 실력을 인정받아 국제협력 업무를 맡았으며, 통화금융정책 담당 차관보, 국제업무 담당 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당시 재부부의 장관, 차관이었던 로버트 루빈과 로렌스 서머스를 보좌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위기를 관리하는 것에 개입했다. 외환 위기 당시 한국을 대상으로 한 협상에 참여했다.  이후 IMF의 정책개발평가국 국장을 거쳐 제9대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되었다. 특히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과정에서 연방준비은행 총재로 씨티그룹, AIG 등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의 구제금융을 이끌었다. 이를 통해 금융위기의 소방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금융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금융권 인사들을 구제했다는 대중들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2009년, 오바마 정권의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구제금융과 금융개혁을 이끌었다. 현재 글로벌 사모펀드인 워버그핀커스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참고자원위키피디아


식별번호KC-O-00033


제목Timothy Franz Geithne


자원유형인물


바이오그래피티머시 가이트너는 196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국제개발처와 포드 재단 아시아 프로그램 담당자로 일했기 때문에, 가이트너는 어린 시절부터 인도와 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살았다. 1983년 다트머스 칼리지를 졸업했으며, 1985년에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경제학과 동아시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재무부에서 중국어, 일본어 실력을 인정받아 국제협력 업무를 맡았으며, 통화금융정책 담당 차관보, 국제업무 담당 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당시 재부부의 장관, 차관이었던 로버트 루빈과 로렌스 서머스를 보좌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위기를 관리하는 것에 개입했다. 외환 위기 당시 한국을 대상으로 한 협상에 참여했다.  이후 IMF의 정책개발평가국 국장을 거쳐 제9대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되었다. 특히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과정에서 연방준비은행 총재로 씨티그룹, AIG 등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의 구제금융을 이끌었다. 이를 통해 금융위기의 소방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금융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금융권 인사들을 구제했다는 대중들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2009년, 오바마 정권의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구제금융과 금융개혁을 이끌었다. 현재 글로벌 사모펀드인 워버그핀커스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참고자원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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