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록

제목시애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설명[연대 통신 #003] 시애틀 전투 - 무슨 일이 일어났나? 지난 주에 일어난 반 WTO 항의 투쟁에 대해 무엇을 읽었든 들었든, 시애틀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지구화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서 연대 투쟁과 결합되어 진행된 시애틀 투쟁이 내세운 대의는 지구화의 한 사례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구화는 WTO가 승인하거나 상상하고 있는 그러한 지구화는 아니다. 미국의 대중 매체, 정치 엘리트 그리고 기업들은 WTO 정책에 저항하는 강력한 세계적인 운동의 출현에 매우 놀란듯 하다.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현상은 저항을 넘어, 국제적 시민 사회의 발전을 향한 첫 걸음이었다. 분석가들은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를 자율적인 시민 사회의 생명력을 척도로 계측해왔다. 이는 민주주의가 형식적 규칙과 선거를 통행 정부 선출 이상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스스로 조직화하고 국가의 통제 하에 있지 않는 사회의 영역에서 주어진다. 이러한 "시민 사회"의 만발은 공유되는 공적 가치의 발전을 위한 토론의 장을 제공하고 공공 주체 즉 시민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이다. 시애틀의 전사들은 바로 그러한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진정한 전지구적 시민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이들은 국제 무역과 상업에 관한 중요한 규칙을 제정하는 과정에 대해 책임성, 민주성, 시민이 규칙 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WTO 각료 회의는 이러한 사람들이 미국 사회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 계기였다. 세계 각지의 각각의 사회 운동은 인터넷 시대가 가능케 하는 엄청난 속도의 통신을 활용해 이미 풀뿌리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비교적 비싸지 않고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는 국제 여행은 작고 재정이 열악한 단체들 간의 직접 연결을 가능케 하였다. 이민의 흐름은 세계 각지의 노동자들을 미국의 주요 대도시로 이주시키고 있다. 개도국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개입이 자선 모금을 위해 수표 한 장 쓰는 것으로 국한되었던 많은 미국 사람들은 이제 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근거와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이들은 자선이 아닌 진정한 연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WTO는 이러한 국제주의자들의 관심의 중요한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WTO는 1995년 창설될 때부터 새로운 지구적 무역 규칙을 제정하고 강제하는 중심적 기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유무역, 민영화, 탈규제화 등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기초하고 있는 WTO의 규칙들은 잘못되어 있다. 이들 규칙들은 노동 기본권, 인권, 환경과 보건의 문제 그리고 다양성을 무시하고 기업의 권력과 상업적 이해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이러한 규칙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왜곡한다. WTO가 상정하고 있는 지구화는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배를 띄워 올리는 물결이 아니라 바닥을 향한 위험한 질주일 뿐이다. 예를 들어 WTO는 사회적 사안은 WTO의 공식 의제 분야가 아니며 무역만 다룬다고 주장한다. 이에 이어 아동노동을 활용하는 다락방 제품을 파는 억압적 정권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똑같은 억압적 정권이 똑같은 다락방 공장에서 똑같은 아동노동을 활용하여 "해적"판 CD나 가짜 유명 상표 티셔츠를 만들어 팔면 WTO는 기업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동시키며 개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쟁점은 "자유무역 대 보호주의"가 아니라 누가 그리고 무엇이 자유를 누리고, 누가 그리고 무엇이 보호 대상인가이다. WTO는 각국은 "과정"이 아니라 "제품"만 규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종 제품에 대한 단순한 규제를 넘어 제화가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규제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은 노동, 소비자, 환경 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성과이다. 최종 제품에서 거의 노예제 하에서 생산된 셔츠와 인간적인 조건에서 노조화된 노동으로 생산된 셔츠의 차이를 찾아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셔츠가 생산되는 과정을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시애틀 투쟁을 촉발시켰다. 그렇다면 무슨 성과가 있었는가? 첫째, 오랫동안 소수의 강력한 권력 집단이 비밀 속에서 진행하며 지배해 온 중요한 공적 정책에 관한 토론에 공공 대중의 참여를 복원시켰다. 둘째, 시애틀 투쟁은 무역에 관한 논의가 "무역에 대한 비관세 장벽"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회 정책과 정부 능력을 다루는 순간부터 순수한 또는 단순한 무역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이해해온 것처럼 공동시장은 그 자체에 사회와 정치적 차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셋째, 시애틀 투쟁은 남반구와 북반구,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X-세대와 60년대 출신의 노련한 활동가들 등 간의 의미있는 새로운 동맹 관계를 촉진하였다. 시애틀 투쟁에 나선 많은 사람들과 세력들 간에는 여전히 많은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WTO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WTO 공식 논의 과정에 노동과 환경을 대표하는 세력들의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선진산업국의 노동자들은 고용 박탈과 기업 이주를 걱정하고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노동 규범과 환경 보호 조치들이 자국 제품의 부국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다양한 의견과 입장들이 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 네트워크들은 토론, 협상 그리고 지구적 연대를 모색하는 장이다. 이것은 바로 국제 시민 사회 출현의 시작이다. 시애틀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들의 목소리는 계속 확산되고 모든 사람들이 듣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1999년 12월 5일 워싱턴포스트 지에 엘레인 버나드 교수가 기고하여 실린 글이다. 엘레인 버나드는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로 하버드대학 노동조합프로그램의 소장이다.


생산자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날짜2000-01-12


기록유형문서류


기록형태기사


주제정치경제


연관링크http://nodong.org/data_paper/84646


식별번호KC-R-00728


제목시애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설명[연대 통신 #003] 시애틀 전투 - 무슨 일이 일어났나? 지난 주에 일어난 반 WTO 항의 투쟁에 대해 무엇을 읽었든 들었든, 시애틀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지구화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서 연대 투쟁과 결합되어 진행된 시애틀 투쟁이 내세운 대의는 지구화의 한 사례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구화는 WTO가 승인하거나 상상하고 있는 그러한 지구화는 아니다. 미국의 대중 매체, 정치 엘리트 그리고 기업들은 WTO 정책에 저항하는 강력한 세계적인 운동의 출현에 매우 놀란듯 하다.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현상은 저항을 넘어, 국제적 시민 사회의 발전을 향한 첫 걸음이었다. 분석가들은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를 자율적인 시민 사회의 생명력을 척도로 계측해왔다. 이는 민주주의가 형식적 규칙과 선거를 통행 정부 선출 이상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스스로 조직화하고 국가의 통제 하에 있지 않는 사회의 영역에서 주어진다. 이러한 "시민 사회"의 만발은 공유되는 공적 가치의 발전을 위한 토론의 장을 제공하고 공공 주체 즉 시민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이다. 시애틀의 전사들은 바로 그러한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진정한 전지구적 시민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이들은 국제 무역과 상업에 관한 중요한 규칙을 제정하는 과정에 대해 책임성, 민주성, 시민이 규칙 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WTO 각료 회의는 이러한 사람들이 미국 사회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 계기였다. 세계 각지의 각각의 사회 운동은 인터넷 시대가 가능케 하는 엄청난 속도의 통신을 활용해 이미 풀뿌리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비교적 비싸지 않고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는 국제 여행은 작고 재정이 열악한 단체들 간의 직접 연결을 가능케 하였다. 이민의 흐름은 세계 각지의 노동자들을 미국의 주요 대도시로 이주시키고 있다. 개도국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개입이 자선 모금을 위해 수표 한 장 쓰는 것으로 국한되었던 많은 미국 사람들은 이제 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근거와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이들은 자선이 아닌 진정한 연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WTO는 이러한 국제주의자들의 관심의 중요한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WTO는 1995년 창설될 때부터 새로운 지구적 무역 규칙을 제정하고 강제하는 중심적 기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유무역, 민영화, 탈규제화 등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기초하고 있는 WTO의 규칙들은 잘못되어 있다. 이들 규칙들은 노동 기본권, 인권, 환경과 보건의 문제 그리고 다양성을 무시하고 기업의 권력과 상업적 이해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이러한 규칙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왜곡한다. WTO가 상정하고 있는 지구화는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배를 띄워 올리는 물결이 아니라 바닥을 향한 위험한 질주일 뿐이다. 예를 들어 WTO는 사회적 사안은 WTO의 공식 의제 분야가 아니며 무역만 다룬다고 주장한다. 이에 이어 아동노동을 활용하는 다락방 제품을 파는 억압적 정권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똑같은 억압적 정권이 똑같은 다락방 공장에서 똑같은 아동노동을 활용하여 "해적"판 CD나 가짜 유명 상표 티셔츠를 만들어 팔면 WTO는 기업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동시키며 개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쟁점은 "자유무역 대 보호주의"가 아니라 누가 그리고 무엇이 자유를 누리고, 누가 그리고 무엇이 보호 대상인가이다. WTO는 각국은 "과정"이 아니라 "제품"만 규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종 제품에 대한 단순한 규제를 넘어 제화가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규제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은 노동, 소비자, 환경 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성과이다. 최종 제품에서 거의 노예제 하에서 생산된 셔츠와 인간적인 조건에서 노조화된 노동으로 생산된 셔츠의 차이를 찾아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셔츠가 생산되는 과정을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시애틀 투쟁을 촉발시켰다. 그렇다면 무슨 성과가 있었는가? 첫째, 오랫동안 소수의 강력한 권력 집단이 비밀 속에서 진행하며 지배해 온 중요한 공적 정책에 관한 토론에 공공 대중의 참여를 복원시켰다. 둘째, 시애틀 투쟁은 무역에 관한 논의가 "무역에 대한 비관세 장벽"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회 정책과 정부 능력을 다루는 순간부터 순수한 또는 단순한 무역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이해해온 것처럼 공동시장은 그 자체에 사회와 정치적 차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셋째, 시애틀 투쟁은 남반구와 북반구,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X-세대와 60년대 출신의 노련한 활동가들 등 간의 의미있는 새로운 동맹 관계를 촉진하였다. 시애틀 투쟁에 나선 많은 사람들과 세력들 간에는 여전히 많은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WTO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WTO 공식 논의 과정에 노동과 환경을 대표하는 세력들의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선진산업국의 노동자들은 고용 박탈과 기업 이주를 걱정하고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노동 규범과 환경 보호 조치들이 자국 제품의 부국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다양한 의견과 입장들이 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 네트워크들은 토론, 협상 그리고 지구적 연대를 모색하는 장이다. 이것은 바로 국제 시민 사회 출현의 시작이다. 시애틀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들의 목소리는 계속 확산되고 모든 사람들이 듣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1999년 12월 5일 워싱턴포스트 지에 엘레인 버나드 교수가 기고하여 실린 글이다. 엘레인 버나드는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로 하버드대학 노동조합프로그램의 소장이다.


생산자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날짜2000-01-12


크기 및 분량첨부없음


언어한국어


출처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연관링크http://nodong.org/data_paper/84646


기록유형문서류


기록형태기사


대주제정치경제


소주제무역/통상


자원유형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