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록

제목[1996.12.26] 양대노조, 노동법 개정안 저지 파업


설명1996년 12월 29일,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여의도 광장에서 힘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국에서 모인 2만 여명의 노동자들이 부르는 '파업가'였다. 그해 겨울, 여의도 광장 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공장과 사무실에서 파업가가 울려 퍼졌다. 전국적인 총파업을 위해 견원지간이었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손을 잡았다. 대한민국 역사 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 총파업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1996년 12월 26일에서부터 1997년 1월 말까지 40여 일간, 누적 규모 3,206개 노조, 연인원 359만7,011명이 총파업에 참여했다. 이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신한국당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였다. 총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이어졌다. 총파업 직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4.5%가 총파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노동법 날치기는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기에, 원천무효 처리를 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65%에 달했다. 한겨레, 1997. 1.10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국회 날치기 처리에 대한 거부감이, 총파업에 대한 지지 여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총파업을 불법 정치 파업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처하겠다는 김영삼 정권의 엄포에도 총파업의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파업을 지도해야 할 노동조합 간부들보다, 일반 조합원들이 먼저 자진하여 파업 대열에 나설 정도였다. 1월 11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범국민 결의대회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였다. 이 날 1997명의 각계 인사들이 총파업을 지지하면서,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총파업 물결이 절정에 이르자, 김영삼 정권 역시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열흘 후인 1월 21일, 김영삼 대통령은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노동관계법을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이 공포까지 한 법안을 국회로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는 김영삼 정권의 항복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날짜1996.12.26


참고자원날치기 국회사, 김예찬, 2016


연표구분김영삼 정권


관련인물조직KC-O-00057; KC-O-00003


식별번호KC-Y-0152


제목[1996.12.26] 양대노조, 노동법 개정안 저지 파업


설명1996년 12월 29일,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여의도 광장에서 힘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국에서 모인 2만 여명의 노동자들이 부르는 '파업가'였다. 그해 겨울, 여의도 광장 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공장과 사무실에서 파업가가 울려 퍼졌다. 전국적인 총파업을 위해 견원지간이었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손을 잡았다. 대한민국 역사 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 총파업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1996년 12월 26일에서부터 1997년 1월 말까지 40여 일간, 누적 규모 3,206개 노조, 연인원 359만7,011명이 총파업에 참여했다. 이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신한국당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였다. 총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이어졌다. 총파업 직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4.5%가 총파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노동법 날치기는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기에, 원천무효 처리를 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65%에 달했다. 한겨레, 1997. 1.10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국회 날치기 처리에 대한 거부감이, 총파업에 대한 지지 여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총파업을 불법 정치 파업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처하겠다는 김영삼 정권의 엄포에도 총파업의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파업을 지도해야 할 노동조합 간부들보다, 일반 조합원들이 먼저 자진하여 파업 대열에 나설 정도였다. 1월 11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범국민 결의대회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였다. 이 날 1997명의 각계 인사들이 총파업을 지지하면서,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총파업 물결이 절정에 이르자, 김영삼 정권 역시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열흘 후인 1월 21일, 김영삼 대통령은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노동관계법을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이 공포까지 한 법안을 국회로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는 김영삼 정권의 항복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날짜1996.12.26


자원유형연표


참고자원날치기 국회사, 김예찬, 2016


연표구분김영삼 정권


관련인물조직KC-O-00057; KC-O-0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