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록

제목[1985.03.06] 정치규제 전면해제


설명전두환 정권 초기에는 대부분의 정치인과사회 각계 민주인사들이 각종의 이유로 정치 규제를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민주화투쟁이 일어났을 뿐 정치권 및 재야 민주세력에 의한 민주화운동은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했다. 그러다 정치규제자들의 해금조치가 시작되면서 정치권이 조직을 재정비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두환은 1983년 1월 18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행한국정연설을 통해 정치 피규제자 해금과 관련, “우선 올해 안에 제1 단계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의거, 정치활동이 금지되어있던 대상자555명 가운데 250명을 2월 25 일자로 해제했다. 2차 해금조치에 이어 5월 김영삼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은 1980년대 초 의 숨죽인 정치권에 폭풍을 불러일으켰고, 전두환은 1984년 2월 25일 2차로 202명을 해 제한 뒤 11 월 30일 3차로 84 명을 해제했다. 이날 민추협의 이 협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총선을 앞둔 제3차 해금에서조차 민추협 의 김대중,김영삼,김상현 등 민주인사들을 제외시킨 것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짓밟으 려는 비열한 처사’라고 규정하고 전면 해금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두환은 1986년 3월 6일 나머지 14명 전원을 정치규제에서 해제했다.


날짜1985.03.06


참고자원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6.10 민주항쟁 페이지


참고자원URLhttp://www.610.or.kr/board/content/page/45/post/332


연표구분전두환 정권


관련인물조직KC-O-00002; KC-O-00003; KC-O-00004


식별번호KC-Y-0031


제목[1985.03.06] 정치규제 전면해제


설명전두환 정권 초기에는 대부분의 정치인과사회 각계 민주인사들이 각종의 이유로 정치 규제를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민주화투쟁이 일어났을 뿐 정치권 및 재야 민주세력에 의한 민주화운동은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했다. 그러다 정치규제자들의 해금조치가 시작되면서 정치권이 조직을 재정비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두환은 1983년 1월 18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행한국정연설을 통해 정치 피규제자 해금과 관련, “우선 올해 안에 제1 단계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의거, 정치활동이 금지되어있던 대상자555명 가운데 250명을 2월 25 일자로 해제했다. 2차 해금조치에 이어 5월 김영삼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은 1980년대 초 의 숨죽인 정치권에 폭풍을 불러일으켰고, 전두환은 1984년 2월 25일 2차로 202명을 해 제한 뒤 11 월 30일 3차로 84 명을 해제했다. 이날 민추협의 이 협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총선을 앞둔 제3차 해금에서조차 민추협 의 김대중,김영삼,김상현 등 민주인사들을 제외시킨 것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짓밟으 려는 비열한 처사’라고 규정하고 전면 해금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두환은 1986년 3월 6일 나머지 14명 전원을 정치규제에서 해제했다.


날짜1985.03.06


자원유형연표


참고자원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6.10 민주항쟁 페이지


참고자원URLhttp://www.610.or.kr/board/content/page/45/post/332


연표구분전두환 정권


관련인물조직KC-O-00002; KC-O-00003; KC-O-0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