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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전두환


사전유형인물조직


직급전 대통령


바이오그래피전두환은 1931년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학했다.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 생활을 시작했고 5.16 직후 육군사관학교 후배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시가행진을 기획한 대가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이 되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를 중심으로 '하나회'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어 군 내부의 박정희 지지세력을 자임했다.  이후 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 육군 제9보병사단 제29보병 연대장, 1공수특전여단장 등을 거쳐 1978년 군부의 요직으로 평가받는 육군 제1보병사단 사단장이 되었으며, 이듬해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 된다.  보안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암살당하자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이를 수습하고 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전두환이 요직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이를 제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자 전두환과 하나회 인사들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을 장악했고, 이듬 해 5.17 내란을 일으켜 헌정을 중단시키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한다.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에 앉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선거로 제11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11대 대통령에 오른 후 헌법개정안을 공고하고 민주정의당 창당을 주도했다. 1981년 1월, 새 헌법에 의거하여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임기 동안 이른바 '3S 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마하려 했다.  전두환은 김재익 등의 경제관료를 중용하고 전자-반도체 산업을 육성하여 한국 경제의 호황을 이끌었으며 최저임금법을 제정하고 국민연금제도를 개편, 복지제도를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산업 합리화라는 명목으로 강제적인 투자조정과 구조조정을 통해 중화학공업 부문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땜빵식 부동산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자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고, 이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전두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하게 일자 백담사로 잠적하기도 했다. 1995년, 내란 및 반란, 부패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고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다.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되었다. 


홈페이지http://www.pa.go.kr/online_contents/president/president11.jsp


참고자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