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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강력한 주도로 산업화와 고성장을 이루었던 개발국가 모델은 70년대 후반부터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1979년 경제안정화종합대책부터 외환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요한 경제정책과 변화의 흐름을 오형석 선생님의 설명으로 함께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가맹국들에게 협정문 제8조에 따라 무역거래 시 경상지급에 관한 제한 철폐, 차별적 통화조치의 철폐, 외국보유 자국통화의 교환성 유지 등의 의무 준수를 요구하며, 이를 수락한 국가들을 '8조국'이라 부릅니다. 다만, 협정 14조에 따라 전후 과도기에 국제 수지 곤란(예: 국제 수지의 항상적 적자)이라는 이유로 경상수지 및 자본 유출입 제한을 용인할 수 있으며,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들을 '14조국'이라 하죠. 대체로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는 국가들은 8조에 해당되며, 보통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은 14조국에 해당됩니다. 한국은 1955년 8월 IMF에 가입한 이래 14조국에 속해 있다가 1988년 11월에 8조국이 되었는데, 이 변화를 'IMF 8조국 이행'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IMF 8조국 이행’은 한국의 경제 성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1985년, 서울에서 열린 IMF/IBRD 연차 총회 개막식에서 연설하는 전두환

이 내용을 더 알아보기 위해서는 IMF 협정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죠. 이 협정문의 원문과 국역본은 국가법령정보센터(http://www.law.go.kr/)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번역이 옛날 문체인데다 조문이 긴 관계로, 아래에서는 핵심만 정리해보겠습니다.

제8조 가맹국의 일반적 의무
   제1절 총칙
   가맹국은 8조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제2절 경상 지불에 관한 제한 무효
   가맹국은 IMF 동의 없이는 경상 거래를 위한 자금이동을 제한할 수 없다.
   제3절 차별적 통화관행의 무효
   가맹국은 IMF 승인 없이는 차별적 통화협약에 참여하거나 복수 통화제도를 시행할 수 없다.
   제4절 외환 보유 잔고의 태환가능성
   가맹국은 타 가맹국이 자국의 통화 잔고 매입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
   제5절 정보의 제공
   가맹국은 IMF에 금과 외환보유고, 국제수지, 국민소득, 물가지수, 외환 매매시세 등을 보고해야 한다.

제14조 과도기
   제2절 외환제한
   과도기 가맹국은 국제 거래를 위한 자금 이동에 제한을 유지할 수 있다.
   제4절 제한에 관한 기금의 조치

제8조 2, 3, 4절에 불합치하는 제한을 유지하는 가맹국은 이후의 제한 유지에 관하여 IMF와 협의해야 한다. IMF는 가맹국이 자금 이동 제한을 철회할 수 있을만한 조건에 놓였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가맹국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다.

IMF 8조국 이행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기 위해 당시에 나온 논문을 잠깐 봅시다. 8조국의 의무는 크게 자금이동 제한철폐(2절), 복수통화제 금지(3절), 자국 통화의 교환성 유지(4절)인데요, 이 중에서 당시에 현실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만한 조항은 기존의 외환관리를 대폭 수정해야하는 ‘자금이동 제한철폐’였다고 합니다.

IMF 8조국의 대표적인 의무조항으로 지적된 것은 세 가지인데, 그것은 (1) IMF 가맹국은 IMF의 승인 없이는 국제수지의 경상지급에 대한 역환제한을 행해서는 안 되며, (2) 수출입에 별도의 환율을 적용하는 이중 환율제를 실행하지 말아야 하고, (3) 외국이 보유하는 자국통화에 대해 교환성을 부여해야 하는 등이다(이외에 자료제출요구에 순응할 의무도 지적된 바 있다). 각각의 내용을 부연해 보면, 첫째로 경상지급에 관한 제한철폐의 경우, 현재의 외환관리 규정에 대한 전면 개편이 불가피한데,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모든 외환을 보증관리하는 외환집중제도를 철폐 또는 대폭 완화해야 한다. 따라서 누구나 외화를 소지하고 뜻대로 반출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이중 환율제의 경우는 현재 수출과 수입에 차등환율을 적용하고 있지 않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고, 셋째로 자국통화의 교환성 부여는 유명무실한 조항으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어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유철규. 1989. 「IMF 8조국으로의 진입과 자본자유화」, 『동향과전망』 3. 122-123쪽. 강조 추가함]

한국이 1988년에 IMF 8조국으로 이행했다는 것은, 1955년 최초 가입부터 1988년 전까지 용인되었던 ‘과도기’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할 명분이 부족해질 만큼 한국의 경제 사정이 나아졌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8조국 이행이 구체적으로 추진된 동기가 IMF의 뜻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살만해졌다’를 내세우고 싶은 한국 정부의 바람 때문이었는지는 당시 핵심 담당자가 아닌 이상 정확히 알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이유가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닌데요, 왜냐하면 ‘어차피 곧 IMF가 8조국 이행을 권고할 것이 뻔한데,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선제적으로 8조국 이행을 선언해서 경제 성장을 과시하는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은 충분히 현실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것 이외에, 한국이 IMF 8조국 가입을 추진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8조국 이행에 수반되는 자본시장 개방이 1980년대 이래 한국 정부가 줄곧 추진하던 일련의 경제정책 기조에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정부 관계자가 명시적으로 밝힌 8조국 이행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늘 국제통화기금 8조국에 가입된 것은 우리의 외환거래의 자유화 수준이 선진국 수준임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의 자유화, 개방화, 국제화를 밀고 나간다는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국제적으로 보여준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1988.09.27 MBC뉴스데스크 보도 중 홍재형 재무부 제 1차관보 인터뷰. 강조 추가함]

1985년 서울에서 열린 IMF/IBRD 연차 총회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단들을 환영하고 있는 도로 구조물.
IMF 연차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한 것은 한국의 성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80년대 중후반의 ‘메가 이벤트’ 중 하나였고,
한국이 더 이상 개도국의 지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세계적 압력에 노출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대외적으로 밝힌 8조국 가입의 배경은 위에서 언급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한국은 경제 성장의 큰 진전이 있었고 최근 수년 동안 여러 부문의 시장 개방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8조국의 자격이 된다는 것이었죠. 이는 한국이 공식적으로 IMF 8조국 이행을 선언한 제43차 IMF/IBRD 연차총회(서베를린, 1989년 9월 27일)의 사공일 재무장관 기조연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본인은 대한민국이 이같은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말씀드릴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1983년 말에 20%에 이르던 수입제한 품목의 비중을 금년도에는 5%로 축소하는 등 수입자유화를 크게 확대시켰읍니다. 관세율도 그동안 이미 크게 인하되었으나 대내적 관세조정작업을 통해 현재 17%인 공산품에 대한 평균관세율이 내년 초에는 11%로, 1992년에는 7%로 인하될 것입니다. 한국원화는 1986년 이래 미달러화에 대해 24%나 절상되었으며 올 9개월 동안에만도 10% 이상 절상되었읍니다. 또한 최근 2년에 걸쳐 한국은 경상거래에 따른 지급과 이전에 대한 제한을 대폭 완화하였으며 직접・간접투자를 포함한 모든 자본거래도 자유화하는 과정에 있읍니다. 사실상 이 점에서 한국은 이미 IMF 협정 제8조의 요건을 거의 충족시키고 있으며, 머지않아 동조항에 의한 의무를 완전히 수락하기를 희망하고 있읍니다. 동시에 우리는 대내외 모든 자본거래의 자유화도 계속 추진할 예정입니다.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본인은 한국이 우리의 개발경험을 다른 개도국에 적극 제공할 것이며, 또한 세계경제에서 보다 폭넓은 역할을 담당할 의사가 있음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유철규. 1989. 「IMF 8조국으로의 진입과 자본자유화」, 『동향과전망』 3. 부록에 수록된 사공일 재무장관의 연설문. 148-149쪽]

1997년 외환위기라는 ‘역사의 정답’을 알고 있는 현재에서 생각해보면 다소 역설적인 역사적 장면 중 하나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어느 한 가지 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성격이었지만 그 중에서 핵심은 역시 자유로운 자본 이동의 조건 하에서 발생한 ‘해외 자본의 급격한 유출’이었잖아요.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IMF 8조국 이행과 같은 자본시장 자유화가 추진된 궁극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의 경제 성장이었고요. 결국 상황의 앞뒤만 이어놓고 보면, 1980년대까지의 경제 성장으로 인해 취해진 조치가 결국 1997년 극심한 경제 위기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를 이룬 셈이고,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극심한 위기의 원인으로서의 성공’이라는 역설적인 문구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집필자 | 오형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연구 관심 주제는 1990년대 전후 한국 자본주의 구조 변동의 원인과 결과이다. 학위 논문으로 <한국 발전국가 전환과 1997년 한보사태>(박사논문)와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에서 국가의 역할>(석사논문)이 있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중앙대학교, 청운대학교(산업대학), 한서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