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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형 선생님의 저서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을 바탕으로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까지 한국의 상황과 IMF와의 협상 과정, 구제금융이 한국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살펴봅니다. 

97년 1월, 당시 재계 자산 순위 14위이자 여신 순위 9위였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맞이했다. 한보그룹은 1980년대 초반 대치동 은마아파트 건설 사업 성공 이후 재계에 급부상했지만, 이후 사업 확장을 위해 계속해서 은행에 빌린 빚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부도 당시 한보그룹의 총부채는 5조7천억원에 이르렀고, 부채비율은 약 1800%에 이르렀다.

1990년부터 한보그룹은 제철산업부문으로 본격적인 진출을 꾀하며 충남 당진에 대규모 제철소 건설을 추진한다. 당진제철소 건설 사업비는 총 5조원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는데, 이 자금의 대부분은 대출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거액의 돈을 대출받기 위해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 회장은 정계와 관계, 금융계의 핵심 인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했고, 당시 한보그룹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은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 없이 수조원의 대출을 승인한다.

이 사상 최대의 금융비리 사건은 ‘한보게이트’로 불리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정태수 회장이 징역 15년을, 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 은행장 등 관련자 10여명이 징역 20~25년을 선고받으며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한보그룹의 부도는 한국경제 전체를 집어삼킬 위기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한보의 부도로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된 은행들은 다른 기업에게 계속 돈을 빌려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게다가 당시 국내의 주요 기업들은 한보 못지않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부채 비율이 400% 이상일 때 빚을 갚다 망할 수도 있는 고위험 기업으로 판단하는데, 97년 당시 국내 1000대 상장 기업 중 이러한 고위험 기업이 342곳에 달했고, 평균 부채비율은 589%를 기록했다.

물론 7,80년대에도 한국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상당히 높았지만 당시에는 부채가 많다는 것이 큰 위험요소가 아니었고 치명적인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산업을 재편하고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것이 쉽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80년대부터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국가주도 개발국가 모델이 힘을 잃으면서 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약화되고 기업의 자율성은 높아졌다. 금융기관의 역할과 기업의 재무관리가 중요해졌지만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관성처럼 진행되었고 금융감독은 이뤄지지 않으면서 위험은 증폭되고 있었다.

기업이 장기적으로는 아무리 유망하고 흑자가 난다고 할지라도, 당장 대출을 갚아야 할 시기에 가진 현금이 없으면 부도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 삼미, 진로, 대농, 기아까지 굴지의 기업들이 쓰러져나갔다. 특히 97년 7월 발생한 기아자동차그룹의 부도는 국가 전체로 위기가 퍼져나가는 데 결정타를 입혔다. 당시 재계 서열 8위였던 기아의 부채는 9조 5,000억 원에 달했고, 기아의 도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결정이 늦어지자 외국인 투자자 및 채권자 사이에 한국경제에 대한 불신이 퍼지기 시작한다.

영상한국사 I 135 1997년 기업들의 연쇄 부도와 외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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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처리방안과 WTO보조금협정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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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이 연쇄 부도를 내며 쓰러지자 그 여파는 금융권으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97년 9월까지 도산한 기업들이 은행에 남긴 빚은 20조 5천억원에 이르렀다. 97년 당시 국가예산이 71조 5천억이니 이는 1년 예산의 3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7년 7월 태국의 바트화 폭락을 기점으로 시작된 동남아시아의 금융위기가 동아시아 전역에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주요한 외화조달 기관이었던 종합금융사들은 일본 엔화를 단기로 빌려와 동남아시아에 장기 투자하는 형태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동남아시아의 경기가 침체되자 종금사의 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일본의 투자기관들은 빌려주었던 돈을 앞다투어 회수했고, 종금사들은 해외에서 돈을 더 빌려올 수도, 단기로 빌린 빚의 만기연장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외환부족은 날로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세안 4개국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정책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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