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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 1년 후, 세기말이었던 1999년은 특기할 만한 해였습니다. 재벌 개혁을 둘러싼 갈등, IT 벤처 붐과 그 이면의 그늘, 수세에 몰린 노동계와 새로운 복지 체제에 대한 요구 등 향후 20년 간 계속 될 논쟁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한 해였습니다. 당시의 이슈들에 대해 진보-보수 언론의 사설과 칼럼을 비교하며 논쟁 지점을 살펴봅니다.

실제 대기업 중심의 은행대출이 작년 4/4분기부터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돌아섰습니다.
대출규모를 비교해 보면 작년 4/4분기에 대기업 대출은 6조원이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5조원이 늘어났습니다.
아울러 저는 국민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정부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고르게 분담케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경제가 궤도에 오르면, 노동자와 농민이나 서민, 중산층 등 모든 국민이 그 성과를 함께 나누고 국가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그러한 정책을 펴나갈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재벌이나 특권층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거나 정경유착, 관치금융, 부정부패를 일삼는 일을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것을, 저는 3·1 영령들 앞에 엄숙히 선언하는 바입니다.

- 1999년 3월 1일, 김대중 대통령 3.1절 기념사 中

특히 재벌개혁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우리 경제 최대의 문제점인 재벌의 구조개혁 없이는 경제개혁을 완성시킬 수 없습니다.
이제는 시장이 재벌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양의 시대가 아니라 질의 시대입니다. 앞으로 무한경쟁의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집단이 아닌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세계 초일류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재벌개혁을 위해 그동안 추진해온 투명성 제고, 상호 지급보증의 해소, 재무구조의 개선, 업종 전문화, 경영진의 책임 강화 등 5대 원칙이 금년말까지 반드시 마무리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계열 금융회사를 통한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겠습니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아야 재벌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순환출자와 부당한 내부거래를 억제하며, 변칙상속을 철저히 막겠습니다.
저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하고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잡은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최근 국내외에서 우려하고 있는 일부 재벌에 대해서도 투명한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여 제2의 기아사태와 같은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1999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 광복절 축사 中

정부 주도 5대 그룹 구조조정에 대한 반응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04.12 조선일보

[한국경제 장기비전] 특화…우리에 맞는 산업 키워야

전경련 유한수 상무


경쟁력을 가지려면 남보다 더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남보다 지식을 더 갖고 있는 산업을 키워야 한다. 남이 먼저 시작한 분야를 따라가서는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의 지식은 대기업 중심으로, 또 중후장대형 산업 중심으로 쌓여 있다. 이런 지식을 두고 무슨 지식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새로 무슨 산업을 육성하기보다 기존 산업의 지식화, 벤처화가 더 손 쉽고 확실하다. 확실한 방법을 두고 굳이 돌아가야 한다면 그 비용은 경쟁력 저하로 나타날 게 뻔하다.

1999.07.22. 동아일보

대우 처리 시장에 맡겨라

서강대 경제학과 조윤제 교수


정부는 기업구조조정에서 80년대 초 산업합리화 개념과 비슷한 빅딜이라는 틀을 들고 나왔다. 결국 대재벌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정부와의 딜을 잘하면 실질적인 구조조정 없이도 독점지위의 확보와 금융지원 등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희망을 갖게 한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종래와 같이 국내시장보호와 금융지원으로 기업 과잉설비와 부실을 풀어가기에 한국 경제와 기업의 규모는 너무 커졌다. 자본시장 역시 정부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크게 축소돼 시장을 설득하고 만족시킬 수 없는 기업경영은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게 됐다.

1999.07.06. 이코노미스트

정부 주도형 부실기업정리과정의 再版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수석연구원


표면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에 의한 핵심업종으로의 재편 계획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정부가 퇴출 시장에 깊게 개입함으로써 ‘과거와의 결별’에 실패했다. 이는 금융기관이 구조조정을 추진할 능력이 없고 스스로의 구조조정을 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60년대 이래 반복돼 온 정부 주도형 부실기업 정리과정의 재판(再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구조조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상품시장·금융시장·노동시장의 제도적 개선은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이러한 정부 개입의 관성은 구조조정의 비용과 책임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사업범위에 대한 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재 추진중인 기업구조조정 정책은 개혁의 중점대상이 돼야 할 과거의 은행-기업-정부 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위기관리적인 조치에 의존함으로써 시장 중심의 새로운 경제시스템 구축에 장애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현재의 정책기조가 지속돼 정부가 설정한 목표가 달성된다 해도 정치적 성과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법과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와 여론에 의한 구조조정은 경제주체들의 혁신능력을 제약하기 때문에 제도와 관행의 변화를 더욱 지연시킬 수 있다. 외부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위기의 조치로 각종 정책수단을 정비하되 정부에 집중된 경제권력을 적시에 민간으로 이동시킬 때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1999.07.28. 경향신문

믿고 기댈 곳이 없다

동아대 사회학과 박형준 교수


빅딜의 표류 또한 구조조정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키고 있다. 한 손으로는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정치적 조정에 의한 빅딜의 강제는 처음부터 모순을 잉태하고 있었다. 결과 보장도 없이 선언부터 해버린 빅딜은 엄청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부산 지역 경제는 멍이 들어 실업률이 서울의 1.5배인 9.6%를 기록하고 있다. 전국의 대우전자 대리점은 졸지에 부도난 기업의 대리점처럼 문을 닫아야할 지경에 빠졌다. 이런 희생을 치르고도 4조원이 투자된 삼성자동차 공장은 어떻게 처리될지, 대우전자는 회생할 수 있는지 답이 없다. OECD가 빅딜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사람들은 빅딜이 '정치와 경제의 잘못된 조합'임을 알고 있다.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작금의 금융 불안도 바로 정부와 재벌의 방침과 약속을 믿지 못하는 '시장의 반응'이다. 실추된 '시장의 신뢰'와 '정치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시킬지 지켜볼 일이다.

1999.05.04. 한겨레신문

재벌 다시 몸집 불리기 나서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엘지의 데이콤 경영권 장악이 유력해짐에 따라 빅딜을 중심으로 한 5대 재벌 구조조정의 큰 뼈대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빅딜은 재벌끼리의 바꿔치기로 끝나가고 과잉설비 해소와 재무구조 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구조조정을 했다는 것을 빌미삼아 엘지가 데이콤 인수에 나서고, 삼성 현대 등이 민영화 공기업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등 몸집불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재벌 구조조정이 이처럼 재벌개혁이 아니라 불완전한 구조조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데는 원칙이 결여된 정책도 한몫 하고 있다. 정부는 엘지의 데이콤 지분제한 조처를 풀어줄 움직임을 보이는 등 한편으로 재벌들에 제재를 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계의 굵직굵직한 요구를 들어주고 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8.15 경축사 재벌개혁 선언에 대한 반응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08.16. 조선일보

대우붕괴와 재벌해체

중앙대 경제학과 신대식 교수


재벌은 개혁되어야 하지만, 정부가 '재벌해체'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반시장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건 대기업에 대한 5대 기본원칙을 성실히 추진하도록 독 려하고 그 이행과정을 감시만 잘 해도 한국의 재벌은 실질적으로 해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재벌을 해체하면 벤처와 중소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재벌해체는 쉽게 말할 수는 있지만, 대안 마련이 어려운 상태여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 된다. 물론 재벌들이 스스로 개혁을 추진한다면 더이상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스웨덴의 '웰렌버그' 같은 대기업그룹은 기업 스스로 그룹을 해체하여 독립적인 기업체제로 변신하여 성 을 거두었다.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다.
어차피 경제는 선택의 문제다. 취하는 것도 선택이지만 버리는 것도 선택이다. 대기업의 개혁은 정부가 좋아하는 말, 즉 시장 경제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선구자 하이에크는 `시장에 부분적으로라도 개입하는 간섭주의 정부는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고 경고하였다.

1999.08.17. 동아일보

재벌개혁 이번엔 제대로...

한양대 경영학과 예종석 교수


재벌개혁은 정부의 규제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으며 기업의 능동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정부가 재벌개혁을 강압적 수단으로만 추진해 나간다면 재벌들의 조직적인 반발과 저항에 직면하여 시기를 놓칠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재벌개혁은 물론 경제 회생 노력마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재벌개혁이 재벌말살정책이 아니라 재벌살리기 정책이라는 점을 인식시켜 기업의 활동 의욕을 자극하고 자발적 협력을 촉구해나가야 한다.
또한 재벌개혁이 미운 재벌 죽이기나 특정재벌 봐주기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결코 안된다. 과거 정권들의 재벌개혁은 노골적으로 그러한 인상과 흔적을 남겨서 개혁의 당위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에 대해 지금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세부 개혁 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하며 어떠한 정치 논리로도 개혁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재벌개혁은 주도세력의 확고한 의지와 일관성 있는 실천만이 성공을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개혁을 주도해나갈 공공부문의 개혁이나 정치분야의 개혁이 미진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1999.08.16. 중앙일보

재벌개혁에 유의할 일


문제는 그 방법과 과정이다. 우선 당국의 강압이나 대결구도 속에 뺏고 빼앗기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레 해체와 퇴출이 이뤄지는 제도적 개혁이어야 한다. 강압과 무리수는 부작용과 후환을 남기고, 그 과정에서 해당재벌은 물론이고 전체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신뢰 또한 속으로 크게 멍들 수밖에 없다.
미우나 고우나 재벌은 한국산업을 끌고가는 견인차다. 이들의 해체는 쉽지만 해체 이후의 대안이 더 큰 문제다.
벤처와 지식산업이 그 대안이라 하지만 이들은 잠재력만 커보일 뿐 우리 현실에선 아직 걸음마단계다. 해체에 따른 성장잠재력 훼손을 극복하고 한국경제를 끌고 갈 후속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주도 위주의 옛 산업정책이 아니라 지식정보화와 연구개발의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국가차원의 기본 밑그림과 전략이 재벌해체 못지않게 급하다.
재벌 스스로도 시대의 흐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전략적 버티기는 사회적.국가적 비용만 증대시키고 해당기업의 자멸을 결과할 뿐이다. 이왕 할 바에야 재벌들 스스로 능동적으로 나서는 것이 모양새도 좋고 시장원리에도 맞는다.

1999.08.19. 경향신문

재벌개혁이 ‘좌경’이라니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조 교수


김대중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재벌개혁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특히 지난해초 재벌총수들과 합의했던 이른바 5대 원칙에 추가하여 새로운 재벌개혁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커다란 진전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해소, 순환출자 및 부당내부거래 규제, 불법, 편법상속에 대한 제재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공중분해식 재벌해체가 아닌가 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재벌개혁은 대기업을 중소기업으로 강제분할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이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 재벌총수의 초법적 지배력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굳이 해체라는 표현을 쓴다면, 그것은 기업의 해체가 아니라 무능한 재벌총수의 지배력 해체를 말한다. 재벌개혁은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1999.08.22. 한겨레신문

재벌구조의 발전적 해체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김기원 교수


철저한 재벌개혁 즉 `재벌구조의 발전적 해체'는 일단 총수세습체제를 타파하고 이를 통해 선단문어발경영의 폐해도 시정하는 게 올바른 접근이다. 그러려면 총수의 소유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일본에서처럼 총수의 소유지분을 강제로 매수하지 않고서도 가능하다. 즉 첫째로 생명보험사·증권사·투신사에 대한 산업자본의 소유제한 조처를 즉각 실시하며, 둘째로 현재 시행중인 부채의 출자전환을 확대 강화해 고부채 재벌과 빅딜관련 재벌의 총수지배권을 이양받으며, 셋째로 총수들의 불법 비리를 엄정 처벌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게 사유재산권 침해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재벌기업은 총수의 호주머니 속 장난감이 아니다. 재벌총수의 출자재산은 기업자산의 3%도 안 되므로, 총수는 자기 재산의 수십배에 이르는 국민재산에 대한 수탁관리자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창업주라도 이미 판단력이 흐려졌고, 경영능력의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탓에 2세 총수들은 대부분 무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 관리자들을 교체키 위한 소유구조의 변화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이다. 그것은 재벌기업을 선진국과 같은 책임전문경영의 대기업으로 환골탈태시키고,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더 고양시키는 길이다. 이제 우리에겐 기업과 국민경제의 거듭남을 위한 결단만이 남아 있다.

대우그룹의 위기와 해체에 대한 반응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년 12월호 월간조선

[집중해부] 대우그룹의 해체 정산서


정부와 재계, 학계 등 전문가들은 「大宇의 실패」를 유동성 위기 탓으로만 분석하지는 않는다. 실패 원인은 「기업의 불건전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大宇의 「유동성 위기」(Liquidity Crisis)는 「불건전한 기업(Unsound Business)」의 문제가 표면화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과다한 부채구조와 IMF 위기 이후에도 계속된 팽창전략이 그룹의 몰락을 불렀다는 지적이다. 大宇의 자금난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大宇 관계자들은 1978년 大宇중공업과 大宇자동차를 인수하면서부터 돈에 쪼들리는 상황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大宇는 이를 빚을 얻어 사업규모를 키우는 방법으로 넘겼다. 1983년에는 大宇전자를 인수했고, 이후에도 무리한 확대경영은 계속됐다.
현대중공업의 한 사장은 大宇실패를 「뿌리없는 경영」탓으로 진단했다. 『현대의 경우 골리앗크레인을 설치할 때도 독자기술 개발로 했으나, 大宇는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뿌리없는 기업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大宇는 「1등기업이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자동차, 전자 등 핵심기업들이 1류 상품을 내놓지 못했고, 이에 따라 돈을 크게 벌어주는 기업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세계경영을 혹평하는 이들은 『국내에서 다른 기업에 치어 밖으로 달아났을 뿐』이라고 말한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창업동지」라는 이유로 경영진의 세대교체를 미룬 것도 大宇 실패의 주요 이유로 지적된다.

1999.08.26. 동아일보

그 얼굴이 그 얼굴


우선 “대우사태는 정부 내에도 재벌비호세력이 있음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는 발언만 해도 그렇다. 문맥 그대로 정부 내 비호세력이 대우사태를 일으키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라면 김위원장은 대단히 용감한 사람이다. 이 사태의 책임이 정부에도 있다는 것을 바로 그 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훗날 정부의 책임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위원장의 진의설명이 요구된다.
이런 몇가지만 제외한다면 김위원장의 지난주 발언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바로 그가 속한 정부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현실을 시인하고 그 이유를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용감했다. 특히 “정부와 금융기관, 재벌에 새 얼굴이 많이 보이면 개혁이 어느 정도 된 것이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이면 개혁은 말로만 이뤄진 것”이라는 ‘얼굴론’은 매우 중요하다. 김위원장이 말한 ‘그 얼굴’의 정의가 무엇이고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날이 가고 해가 가도 바뀌지 않는 인물들을 얘기하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얼굴인 3김씨 중 두 사람이 정부의 수뇌부에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1999.08.28. 중앙일보

명예로운 대우 처리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으로 채권금융기관들은 추가대출, 부채탕감, 출자전환 등의 부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부실의 규모도 가늠키 어렵거니와 이 모두가 공적자금의 투여와 연계되게 돼있다.
정부가 워크아웃을 머뭇거린 배경도 '밑빠진 독' 처럼 부실을 메워넣게 됐을 때 그 뒷감당과 여론의 특혜시비가 두려웠을 것이다.
앞으로 대우 처리과정 중 금융.실물부문의 안정이 우선이긴 하나 공적자금 투여의 최소화도 중요한 처리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대우의 워크아웃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일 뿐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
대우 자신의 책무도 무겁다.
특히 김우중 (金宇中) 회장의 잦은 해외출장과 자구 (自救) 노력 지연이 논란을 빚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퇴출기업의 문제는 으레 임자없는 회사로 전락, 부실덩어리가 커지고 부실화도 급속히 촉진된다는 점이다.
경영진들조차 책임감과 자존심을 쉽게 저버린다.
'버리는 게 얻는 것' 이듯 金회장과 '대우인(人)' 들이야말로 명예를 걸고 질서있는 구조조정과 경영정상화에 배전의 분발을 보여줘야 한다.

1999.08.28. 경향신문

대우 워크아웃 결정 이후


워크아웃 추진으로 대우의 부실은 직접적인 국민부담으로 떠념겨지게 됐다. 채권단이 거액의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면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러나 공적자금 지원에 앞서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대우 경영진과 채권금융기관 책임자를 대상으로 한 엄중한 책임추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부담과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그것은 얼마만큼 빠르게 구조조정을 추진해 기업 정상화를 이뤄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1999.08.16. 한겨레신문

㈜대우만 부도처리를

전남대 이채언 교수


공적자금 투입은 대우와 대우 채권자 모두를 만족시킬지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와 서민대중에게는 영원한 가난과 질병의 멍에를 씌우는 일이다. 돌팔이 전문가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아편을 처방하지만 옳은 의사는 오히려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을 권해야 한다. 직업적인 `경제전문가'들은 이 공동체가 장차 어디로 갈지, 우리 후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구조조정을 통해 얻는 막대한 투자이익, 주식차익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지금이 바로 치부할 절호의 기회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금융투기꾼의 신뢰, 금융시장의 신뢰가 중요한가 아니면 서민대중의 신뢰, 실물시장의 신뢰가 중요한가를. 정부가 정치논리에 따라 투기꾼의 이익을 보장한다면, 근로자와 서민대중들이 나서서 정치논리를 뒤집고 경제논리를 관철시켜야 한다. 고통을 외면하는 인간의 삶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아편을 거부하기 위해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 후손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겪어야 하는 아름다운 고통이다. 시장의 신뢰라는 해괴한 논리로 경제논리를 유린하는 사이비 전문가들의 정치적 처방에 더 이상 현혹되면 안 된다.

1999년 12월, 재계의 정치활동 선언에 대한 반응

조선일보 계열 동아일보 계열 중앙일보 계열 경향신문 계열 한겨레 계열

1999.12.06. 조선일보

[노조 점거농성]"재계의 정치활동 막아라" 육탄반격


재계가 이번에 유례없이 강하게 나온 배경에는 총선을 앞두고 노와 정이 손잡고 사를 따돌리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호탄은 지난 3일 경제5단체의 「정치활동 선언」 기자회견이었다.
정확한 소식통에 따르면 경제 5단체의 「정치활동 선언」 기자회견은 회원사들과 사전에 조율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소식통은 『재계가 이런 선언을 치고 나온 것은 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 불허」 조항을 노동계와 정치권이 뒤집기로 몰래 합의했다는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내년 총선에서 여권과 노동계가 손잡고 97년 대선 때처럼 공동정책안을 낼 것이라는 정보도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로서는 정치 활동이라는 최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경총 조남홍 부회장은 이와 관련, 『4대 그룹이나 기업 전반에서 딱 부러지게 동조하지는 않았다』고 전제한 뒤 『노조 전임자의 임금 문제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공감대는 형성되었기 때문에 대충 동의하리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1999.12.07. 동아일보

노사 강경대립 걱정된다


물론 재계의 정치활동 선언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노조의 정치활동이 허용되고 있고 각종 이익집단들의 정치참여가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가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선언한 것을 잘못일 수 없다고 본다. 더구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노사정 합의로 법제화한 것이다. 노동계가 이의 개정을 주장하는데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겠으나 방법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현재 노사관계 현안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있다. 여기에 정치권이 섣불리 개입한 것이 잘못이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본격 시행까지 2년이나 남았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이 노동계를 의식, 서둘러 법개정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 노사관계 안정을 결정적으로 해치는 결과를 빚었다. 여기에는 정부의 무소신도 한몫을 했다.
경제가 이제 막 회복세로 돌아선 마당에 노사갈등의 증폭은 경제회생의 기틀을 무너뜨릴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노사 어느쪽에도 도움이 안된다. 민노총도 노사정위 복귀를 더이상 외면할 일이 아니다.

1999.12.07. 중앙일보

노사 원칙을 버려선 안된다


걱정은 정치활동을 표면에 앞세운 이같은 공방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노사마찰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첨예한 이해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하고 한국노총도 외면하자 정부가 지난 6월 '6.25 노정합의' 를 통해 관련 조항의 연내 법 개정을 약속하면서 불거졌다.
노조전임자의 임금지급 금지는 재정자립 기반을 갖추지 못한 노동계에는 사실상의 노조활동 중단과 다름없다는 우려를 모르는 바 아니다.
때문에 노동계는 기회 있을 때마다 불만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이는 지난 97년 3월 노동법 개정에서 여야 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노조전임자 급여 문제는 2002년 시행 예정으로 본격 시행은 아직 2년이 남았다.
따라서 아직 시행도 안해보고 시행이 몰고올 문제도 모르는 상태에서 폐기나 개정을 고집하는 것은 성급한 처사다.

1999.12.08. 경향신문

재계의 정치활동?

성공회대 사회학과 김동춘 교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한국에서 재계는 정치활동을 안해온 것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많이, 그리고 부당하게 해왔다. 그에 비해 노동자들은 정부수립 이후 지난 50년 동안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다. 재계의 정치활동은 국가, 즉 대통령 및 국회의원을 상대로 음성적으로 지속됐다. 그것이 정부수립 이후 이땅에 만연한 정경유착과 부패의 역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세력이 능력껏 정치하자고 하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공공연하게 돈이 정치를 지배하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종언을 고하게 되고,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된다.
법의 이름으로 마음대로 정치헌금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며, 또 공정한 것도 아니다. 정치와 돈을 분리시키고, 노동자와 서민의 이해가 대변 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활동에서 돈 가진 자의 자유를 보장받겠다는 것은 문명을 야만으로 돌리는 일이다.

1999.12.07. 한겨레신문

재계 금권정치 위협

경상대 경제학과 장상환 교수


양식 있는 국회의원들이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을 없애기로 한 것을 두고, 재계가 자신들의 의견을 대 변할 의원을 선별해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조직적 낙선운동을 펴는 등 정치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나서 소동이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난센스이며, 자칫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위협할 수 있는 행태라고 하겠다.
형편없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돈으로 국회의원들에게 노골적인 협박을 하겠는 것 역시 부작용만 크고 국민들로부터 고립화만 초래할 뿐이다. 정치인들을 재계의 심부름이나 하는 하수인으로 만들게 되면 도대체 국가관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자본가들로서는 이른바 `후원회' 등을 통해 정치인에게 정치자금 을 기부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있는 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다만 기업이 정치자금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기업의 부가가치는 노동자와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배당받은 이윤 가운데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제공하면 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선진 자본주의국가처럼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치제도도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확립된 질서를 참고하여 합리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